행복 하나를 곁에 두고 싶어서
캐나다에도 파릇파릇 연한 연둣빛이 가득한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다. 봄이 시작되는 한국 3월의 봄처럼, 온도는 부드럽고 바람은 살랑이며 하늘은 유리처럼 맑고 푸르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지나며, 봄이 조금 일찍 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한참 머물던 겨울이 지나고, 나무와 꽃이 춤을 추는 봄이 찾아왔다.
블랙과 흰색이 어우러진 거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봄내음이 섞인 바람이 내 얼굴에 닿았고, 잠에서 덜 깬 몸을 천천히 깨워 주었다. 봄내음. 언제 들어도 마음 설렌다.
발코니로 걸어 나가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연둣빛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무야, 잘 잤어? 와, 그새 봄이라는 옷을 입었네.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 오늘도 잘 보내. 나도 오늘 하루를 기꺼이 살아볼게.” 누가 보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혼자 중얼중얼 건네는 말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이다.
나는 자주 나무와 하늘, 구름과 별, 달과 햇살에게 말을 건넨다. 호수에 가면 호숫가를 날아다니는 새에게, 여러 가지 색으로 피어난 꽃들에게도 말을 건넨다. 내게 자연은 언제나 친구처럼 느껴진다. 캐나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그런 마음을 더 깊고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최근 아호파파님이 이끄는 독서모임 [우아한 연인]의 발제문에서 이런 질문을 보았다.
“당신만의 아침에 고대하는 커피 한 잔이 있는가? 당신이 꼭 지켜야 하는 소박한 즐거움은 무엇인가?”
작가님들은 각자 자신만의 소박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근사한 곳에서 온라인카지노를 먹어요. 저를 제대로 대접해 주는 기분이 들거든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반신욕을 해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산바카라해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좋아해요.” “목욕탕에 가요. 어릴 적 갔던 목욕탕 있잖아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소박한 즐거움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커피와 호숫가를 떠올렸다. 불면증이 심해진 뒤로, 오전에 한 번 마시는 커피는 아침을 기쁘게 여는 순간이 되었다. 커피빈을 가는 소리와 그 향긋한 냄새는 마음을 먼저 깨운다. 때로는 아침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잠에 들기도 한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곳은 호수다. 온라인카지노에 호숫가 이야기가 많은 것도, 그만큼 내가 그곳을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 호숫가에 가면 마음이 잔잔해지고, 복잡했던 생각들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마치 소란한 일상이 물결 아래로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우뚝 솟은 빌딩과 사람들의 말소리, 차 경적과 공사 소리, 버스 엔진음이 가득한 도시의 소음 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파도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자연에게 건네는 말들이 어우러진다. 그렇게 내 시선이 머무는 순간마다, 울림과 정적 속에서 조용한 대화가 피어난다.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감각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도 행복은 거대한 성취의 순간보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작은 즐거움과 더 깊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드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하루는 달라질 수 있다.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작은 기쁨들이 마음을 조용히 채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의 향이나 익숙한 풍경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순간들이 하루의 결을 바꾼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들이 쌓여 마음의 바탕을 만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마음은 다양한 색으로 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바라보는 일도 내게는 그런 시간이다. 나무의 색이 조금 짙어졌는지, 하늘의 빛이 오늘은 어떤지,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스치는지 살피다 보면, 세상은 조금씩 다른 얼굴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작은 차이를 알아보는 일이 좋아서 자꾸만 밖을 바라보게 된다. 삶은 때로 멀리 있는 목표보다 가까이에 있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 어쩌면 우리가 찾던 행복이 아닐까.
햇빛을 가득 머금은 나무가 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반짝이며 살아가라고,
이 눈부신 날을 네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것들로
아낌없이 채워보라고.
그 누구도 너의 소중한 하루를 쉽게 방해하지 못하도록, 슬픔이 머물 자리에 기쁨을 채워 넣으며
너의 주변을 찬란한 빛으로 물들여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