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기억, 목소리와 눈빛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저녁이었다. 빗줄기는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세차게 들이쳤다.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잠시 자리를 뜬 친구가 돌아오기 전까지,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히 내 귓가를 채워주는 재즈 음악. 제목은 모르지만 드럼과 콘트라베이스의 조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음악에 빠져있는 나에게 친구가 돌아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수진아. 그거 알아? 사람을 잊을 때 가장 먼저 잊히는 건 목소리래. 그다음이 눈동자고."
"목소리? 아 그래? 그다음은 눈동자..."
나는 친구의 말을 낮은 메아리처럼 따라 했다. 그러다 문득 멀어진 이들의 목소리를 찾으려 집중해서 머릿속을 굴려 보았다. 하지만 목소리도 눈동자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고작 몇 해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목소리가 잊힌다는 건 이제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는 단절을 의미해서일까. 마음을 읽는 통로인 눈빛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상대의 진심이 더 이상 나에게 읽히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기억을 저장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분명 그 순간들을 함께 살아냈는데도, 정확한 소리 대신 흐릿한 느낌만을 기억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청각 정보는 시각 정보보다 뇌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짧다. 시각은 잔상이 길게 남지만, 소리는 들리는 즉시 사라지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청각적 잔상을 '에코 기억'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메아리치듯 금세 흩어져 버리는 기억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사랑했던 이의 음절 하나하나를 이미지보다 먼저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친구와 대화한 후 이 내용이 잊혀질 즈음, 엄마와 통화하다 어렴풋이 그 말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잊히는 건 목소리래.'
순간 나는 애플워치의 녹음 기능을 켜고 엄마와의 대화를 녹음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지금 엄마와 나누는 대화는 녹음 중이에요."
내가 왜 엄마의 목소리를 기록하는지, 그리고 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함께 설명했다.
예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엄마와 매일 통화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에게 딸이 할 수 있는 다정함의 표현이자,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과 고민, 앞으로의 계획.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는 버팀목이 된다.
최근 심리검사에서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를 확인했다. 결과는 안정적이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높은 신뢰를 쌓아온 사이였다. 단순히 가족이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엄마는 나에게 깊이 의지할 수 있는 영혼의 단짝과도 같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든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면 "응, 수진아"라고 응답해 주던 엄마의 한마디는, 나에게 언제나 '응'이라고 되돌아오는, 가장 다정한 삶의 메아리였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차가운 칼날이 가슴을 에이게 만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또한 내 마음의 가장 단단한 지지대 하나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다는 건 내 삶의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엄마가 그리울 때면 함께 웃던 소리와 지친 목소리까지도 꺼내 들을 수 있도록 그 흔적을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그리고 나를 빛나게 바라봐 주는 별 같은 눈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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