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데 혼자 살지는 않는다. 도움을 받고 산다.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혼자 사는 사람 없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게 되니 꼭 인사를 하는 삶으로 살라고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인사를 잘하는 학생으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나도 남들처럼 친구들과 만나서 하루를 보냈다. 어릴 때는 여동생과 함께 하는 일이 더 많았다. 3살 차이 여동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나를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고 친구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나중에는 끼 많은 여동생을 좋아했다. 밥을 먹고 하루를 정리할 때 즈음이면 여동생은 "언니 친구들은 다 착해 엄마"라고 시작을 하면서 그날 하루를 다 이야기했고 그런 여동생을 보시는 엄마는 "좋지 그러면" 하시며 나와 여동생에게 친하게 지내라 하시며 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학교 앞 떡볶이를 먹으며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내 주특기는 고무줄과 공기놀이였다. 학교에서 연마하지 못한 둘을 집에서 열심히 하니 엄마는 그게 신기하신지 나중에는 "오른손은 누구나 다 하니 왼손으로 연습해라" 하셨다. 나는 그럼 "오 그럴까?" 하고 호기심에 시작한 왼손으로 연습한 공기놀이는 학교에서 인기 만점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친구들에게 섭외 1순위가 되었다. 나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났지만 엄마에 꾐에 양손잡이가 되었다. 아빠가 양손잡이다. 여동생은 양손잡이지만 나는 오른손잡이라 늘 마음이 걸려서 훌쩍였는데 엄마가 고쳐주셨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까지는 떡볶이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가서는 친구들이 확 줄어든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에서는 내 생각과 문화가 맞아야 친구들이 있을 수 있었다.
일단 말하는 게 힘들었다. 이유는 나중에도 몰랐지만 그때는 그랬다.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서 다시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들 중 일부는 결혼을 해서 또 헤어지고 지금은 친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핸드폰에는 이름들이 있지만 막상 누르기에는 어려운 이름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름만 있는 이들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거나 허전하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은 편하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고 나도 다르지 않게 그들에게 무슨 큰 힘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인데 연연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서 그냥 혼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마흔의 나이를 넘기면서 관계에 대한 정의를 다시 고려하고 있다.
엄마는 죽기 전에 딱 3명의 친구가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하셨다.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내 삶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라는 정의도 관계라는 정의도 지금은 매년 달라지고 있다.
물론 이웃들의 고마운 분들이 계신다. 늘 가는 편의점 점주님은 사탕을 주시고 이웃에서 가끔씩 뵙는 어르신은 건강을 물어 봐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