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기념.
나에게는 보름달빵이 아주 특별하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퍼포먼스는 보름달빵이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아주 유명한 제과점이 있었는데 그곳 근처만 가도 빵집인 건 알지만 얇은 지폐하나 없는 우리 집에서는 그냥 눈요기였다. 어쩌다 아빠가 월급을 타서 돈이 남으면 엄마는 소보르빵을 사주셨는데 하나를 다 먹기가 아까워서 다음날까지 먹겠다고 정말 아껴먹었다. 어린 내 생각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 무조건 저 빵가게에서는 무한정 빵을 사리라, 야심 차게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게 부자의 조건은 빵을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반 친구 중에서는 그렇게 사는 친구가 있어서 어떨 땐 부럽고 어떨 땐 부럽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는 집에서 빵을 직접 해주셨다. 팬케이크 비슷한 카스텔라를 해주셨는데 아주 맛있었다. 달걀이 지금처럼 아주 비싸지 않아서 휘핑처럼 모양을 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고명들을 넣어서 해주셨는데 카스텔라는 명작이었다. 그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는 없었다.
때는 내가 6학년, 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이라고 편지를 쓰라고 햐셨다. 편지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선물을 살 수 없어서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꽃을 사서 드렸는데 매년 똑같은 1000짜리 꽃이었다. 생화도 아니고 조화이다 보니 나이가 들고 생각이 많아지니 그렇게 드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동생과 상의를 했다.
동생은 그래도 사자고 했고 나는 그러지 말고 돈을 모아서 보름달 빵을 사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시는 음료수를 사자했다. 여동생은 그때만 해도 어려서 춤을 참 좋아해서 연습을 해서 저녁 다 같이 모이면 네가 춤을 춰서 웃음을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당일 엄마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우리 둘을 보시고는 "아니 올해는 꽃이 없네" 하셨다. 우리는 "응" 하고 손을 씻고 밥을 먹는데 엄마는 "아니 그 좋은 꽃은 왜 안 사?" 하고 물으시는데 나는 "매번 똑같은 꽃인데 뭘"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그래도 난 좋더라" 하셔서 내심 섭섭하심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오는 엄마와 텔레비전을 보시는 아빠를 불러서 우리는 "짠~" 하고 슈퍼에서 산 보름달빵 3개를 위로 올리고 성냥을 하나 붙여서 불을 냈다. 그리고 아빠 엄마가 좋아하시는 동요 한 구절을 부르고 여동생은 귀여운 춤을 췄다.
그때였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고 아빠도 다르지 않으셨다.
나는 "엄마 왜 울어?"
엄마는 "아니 이렇게 하려고 꽃을.." 하시면서 소매로 눈물을 닦으셨고 나는 "불나겠다. 빨리"라고 해서 다 같이 그 불을 끄고 집에 있는 과도로 빵을 잘랐다. 아빠는 "하 이래서 어른이 되는구나.." 하시며 그때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셔서 우리는 "엄마 아빠 좋지?" 하면서 답을 기다리는데 엄마는 "우리 딸들이 고맙다" 하시면서 머리를 만져 주셨다. 아빠는 그 장면을 잊지 않고 싶다시며 동네에서 카메라가 있는 사람에게 가서 부탁을 해서 한 장 찍었다.
우리는 별것 아닌데 하고 생각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며 시간을 보내며 자려고 누웠는데 아빠는 "다음 해 어버이날은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편지만"이라고 하셔서 여동생은 "응"이라고 했지만 난 눈물을 보이셨던 부모님 생각에 돈을 더 많이 모아서 더 큰 빵을 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 내년에는 이것 보다 더 큰 빵에다 해 줄게"라고 하며 이불을 덮고 하루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그런 우리 둘을 한참을 보시며 "내가 외할머니에게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네" 하시며 어릴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셨는데 지금은 약간 이해를 할 수 있다.
엄마도 효녀이다. 귀한 딸이기도 하고 그러나 늘 부족하다고 하시는 당신을 보면서 나도 그런다.
"미안해 엄마 올해는 별로네" 이렇게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자식 키우면서 바라는 부모는 없다" 하고 한칼에 끝내시는 엄마 말씀이 더 울려서 가슴이 아프다.
자식을 위해서 금반지 은반지 다 팔아서 살렸는데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싶어서 마음이 복잡했던 오늘, 전화를 하면서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드리며 한때는 내가 왜 태어났을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태어났으니 밥 값은 해야 하는데 , 하고 늘 물음표를 달고 산다.
엄마는 지헤로우시며 나의 롤모델이다. 초등학교 때는 헬렌켈러가 멋있었다. 극적인 삶을 사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는 최고로 멋있다. 그래서 나는 늘 말없이 엄마 손을 잡으면 그 전해지는 잔잔한 감동으로 감사합니다를 전한다.
지금은 맛있는 빵 많이 먹을 수 있고 사기도 하지만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줄이고 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 늘 빵을 사가지고 간다. 모전여전 엄마와 나는 빵을 너무 사랑해서 엄마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신다., "내 제사는 그냥 빵 하나만 올려" 웃으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