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먹는 솜사탕 같은 봄날.

by몽접

화무십일홍, 아무리 예뻐도 십일이 면 진다는 봄날이 가고 있다. 너무 바빠서 꽃이 언제 피었는지도 몰랐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프레시를 켜고 나도 사진을 찍을까 생각을 하는데 문득 지난겨울이 생각났다. 유독 추위를 많이 느껴서 너무 추워서 핫팩을 장착하고 다니면서 나무를 바라보며 "너도 춥지?" 하면서 괜히 나무를 쓸어 담으며 헐벗은 나무는 얼마나 추울까 생각을 하면서 용산구를 지나치면서 흘겨봤던 나무가 생각이 났다. 나무가 추울까 봐 손으로 직접 짠 니트가 나무를 감싸고 있었고 형용색색이 있는 나무들은 그나마 그 추위를 그렇게 견디고 있는데 따습게 보여서 나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겨울을 버티는 방식은 여러 가지 방식이다. 말없이 생각하고 말없이 그저 그렇게 있는 나무들은 추워도 춥다고 못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내 장갑을 벗어서 만져 줄 수 있는 것 밖에 없어서 나보다 더 단단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서 자연은 나보다 더 관대함을 알기에 고개를 숙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인간은 그렇다. 겨울이면 봄을 생각하고 여름이면 겨울을 생각한다. 늘 멀리 봐야지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벚꽃이 날리며 비가 내리면 꽃잎이 거리를 장식하고 행여나 아플까 봐 나는 밟지 못하겠다. 나무가 고통스럽게 견뎌낸 그 그림에 인간이 손을 내미는 것이 차마 미안해서 말이다. 그래서 떨어지는 꽃잎이 나무에 달린 입술 같아서 행여라도 내가 밟으면 그들의 세포 하나하나를 밟는 것 같아서 나는 뜀뛰기를 한다. 그렇게 하면 멀어지는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그 날리는 꽃잎들은 이제 봄이 가고 있음을 나에게 알린다.


솜사탕 같다. 어릴 때는 이렇게 봄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와서 "몽접아 고무줄 하자"라고 해서 그럼 봄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단수를 높여서 고무줄을 하면 친구들과 땀을 내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한 참을 해서 한 바퀴를 하고 나면 봄바람이 불고 허기가 져서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100원어치의 떡볶이를 먹으면서 다음에는 다른 팀을 형성해서 공기놀이를 하고 그러다 남자아이들이 합류를 하면 얼음 땡을 하면서 정말 봄을 마음껏 즐겼다.

얼음땡을 할 때는 죽기 살기로 했다. 얼음이라고 크게 이야기를 하고 술래가 안 보이는 사이에 얼음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가서 터치를 해주며 땡 하고 달아나는 구조로 하는 달리기 게임이었는데 남자 여자 구도일 때는 정말 오늘을 사는 것처럼 했다.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면 숨이 차서 "야 우리 조금만 쉬었다 하자"라는 이야기가 술술 하고 그러다 쉬면 어떤 친구는 불량 식품을 한 바퀴 돌려서 우리는 재미있게 봄을 즐겼다.


학교가 3월이 되면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들이 학교 앞에 정말 많으셨다. 그런데 그 솜사탕은 가격에 비해 빨리 먹게 되어서 너무 감질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아껴서 먹겠다고 집까지 가는 동안 녹지 않게 하려고 뛰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고 다쳐" 하시면서 걱정을 하시고 나는 "엄마 이거 솜사탕, 드셔" 하면 엄마는 "어른들은 이미 많이 먹었어" 하시며 나에게 권하셨고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찢어 드리면 "이게 달다" 하시며 미소를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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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봄은 솜사탕 같다. 아껴 먹는 솜사탕. 그래서 살살 녹여 먹는 솜사탕에 너무 금방 없어져서 눈물이 나는 그런 봄 말이다. 하지만 봄은 봄, 달지만 쌉싸름한 봄이라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봄은 싫지가 않다. 다만 어려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렇게 금방 사라지는 봄이 아쉽고 슬프다.


봄이라면 사람들은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또 다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는 어떻게 생각을 할까? 견디며 인고한 세월에서 피워 낸 자신의 결과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솜사탕 같은 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에 넣어 두려고 한다. 할머니는 해마다 보는 봄이 아깝다고 하셨다. 나도 살짝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래 솜사탕, 같은 봄. 나도 이제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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