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인턴 채용의 기준은 어디까지 올라간 걸까? #1

IT, 빅데이터 에이전시-UIUX 디자이너 청년인턴 면접

by세상보정

상암. 지하철역을 나오니 방송국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사십 분이 남아서 회사 건물 앞을 한 바퀴 돌았다. 유리로 된 외벽에 내 모습이 비쳤는데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어서 다시 맸다. 일찍 도착한 김에 근처 카페에 앉았지만 커피는 거의 마시지 못했고 자기소개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면접을 기다리며 건물안에 있던 의자는 차가웠다. 손바닥에 땀이 계속 나서 휴지로 닦았다.

면접은 자기소개부터 시작됐다. 대표 프로젝트와 서브 프로젝트 그리고 인턴 경험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처음엔 조금 떨렸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긴장이 풀려 술술 나왔다. 역시 면접은 경험으로 극복해낼 수 있다라고 생각이들었다. 그러다 익숙한 질문이 들어왔다.

"전공이 언론 쪽인데 어떻게 디자인을 하게 됐나요?" 이 질문은 항상 듣는다. 비전공자인데 왜 이쪽 직무로 오게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말이다.

비슷한 말을 군대에서도 들었다. 그때는 학벌이었고 지금은 전공이었으니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언론을 공부하며 사람을 관찰하고 심리를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고 문제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풀고 싶어서 직무를 바꿨다고 답하자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디자인 툴로 넘어갔다. 피그마와 클로드 코드를 주로 쓰고 어도비는 이년쯤 다뤘다고, AI가 초안을 뽑아도 결국 포토샵으로 마무리를 해야 완성도가 나온다고 말했다. 면접관이 무언가를 적는 동안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덮더니 잠시 나를 봤다.

"AI가 그렇게 다 만들어주면 앞으로 디자이너는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을 텐데 그날은 답이 입 밖으로 먼저 나와 있었다.

AI가 뽑는 초안에는 특유의 어색함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AI스러움'이라 불렀다.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논리에 맞지 않는 화면을 그럴듯하게 내놓기도 하고 결국 사람이 들여다보며 검수해야 한다고. AI가 빨라질수록 그 눈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니 디자이너의 필요성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커진다는 말을 하는 동안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면접관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적었다.

뒤이어 날카로운 질문이 몇 개 더 들어왔다. 마감이 사흘 남았는데 일이 엿새 치 남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길래 우선순위부터 나누고 팀과 조율하겠다고 답했고, 개발자와 의견이 부딪히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는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근거 자료와 대안 디자인을 함께 가져가겠다고 했다. 헬스가 취미라면서 담배를 피우면 모순 아니냐는 질문에는 잠깐 멈칫했지만 솔직하게 인정했다.

면접이 끝나고 건물을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통유리에 비친 얼굴을 보는데 그날은 좀 웃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휴대폰을 자주 봤다. 밥을 먹다가도 화면을 켜서 알림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껐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랬다. 잘 봤다고 생각했다. AI 질문에 답하던 내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고 면접관이 적던 그 무언가가 좋은 신호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계속 기다려도 답은 오지않았다.

나는 하루종일 핸드폰만 부여잡고 어느샌가 조그맣게 피어나는 '희망'을 믿고 싶었다. 하고있던 공부 하고있던 일이 전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잡생각들로 가득했던 것이었다. 휴대폰을 바카라상에 엎어 놓고 한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대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잘 봤다고 믿은 만큼 무너지는 자리도 깊었다. 그날 저녁은 불을 켜지 않았고 라면을 끓이다 말았다. 젓가락은 들지 않았다. 면접장을 나올 때만 해도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AI 워크플로우를 익히고 포트폴리오를 채우고 압박 질문을 받아쳐도 내가 서 있던 건 결국 인턴이라는 출발선 앞이었다. 노트북을 열어 인턴 공고를 다시 띄웠다. 우대사항 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데 줄이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은 휴대폰을 쳐다보지 않았다. 잘 봤다고 믿었던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화면을 껐다. 면접관이 적던 그 무언가는 좋은 신호가 아니었던 거다. 불도 며칠째 켜지 않았다. 상암을 나오며 해가 곱다고 생각했던 게 멀게 느껴졌다.

신입도 아닌 인턴 한 자리를 두고 100명이상의 사람들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되고 1위가 되어야한다. 기준이 어디까지 올라간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해내야지. 언젠간 취업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자바카라하지만 흘러보내려고 애써 노력한다. 울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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