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기억 속으로
부모님이 살던 안좌집을 둘러보고는 여기까지 왔으니 퍼플대교도 보고 가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바다 위에 나무다리를 놓고 보라색으로 온통 칠 해 놓은 다리. 퍼플대교다!
부모님이 사실 때 이미 공사를 시작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완공을 했었던 것 같다. TV를 통해서 자주 봐왔기에 그냥 보라색 다리의 행진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모님이 안좌로 내려가시고 그 해 여름부터 방학마다 아이들의 시골살이가 시작되었었다. 아이들만 신난 게 아니라 올케들과 조개를 잡으러 다니느라 더 즐거운 날들이었다. 가장 신나 했던 막내올케는 조개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었다.
퍼플대교가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바지락을 잡으러 다니던 곳이었다. 너무나도 한적해서 쓸쓸하기조차 했던..
건너편 반월도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바지락을 잡던 곳이다.
뻘을 살짝 걷어내면 촘촘히 줄을 지어 박힌 바지락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며 물줄기를 내뿜던 핫스폿에는 풀 빌라가 들어서 버렸다. 그 한적하고 슬프기조차 했던 섬은 어디로 간 걸까! 온갖 가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퍼플대교가 생기면서 물길이 바뀌어서 그런지 바지락이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엄마가 무척이나 아쉬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쪽 섬은 관광객들로 인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니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좋은 일인데.,
왠지 씁쓸하고 가슴이 아린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 쓸쓸하고 슬프기 조차한 섬이 왜 이리 그리운지 모르겠다.
풀빌라가 들어선 바로 위는 딱 한 채 초가집이 있던 곳이다.
그 초가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서울 살던 아들이 와서 그 집을 300만 원에 팔아서 가져갔다고 들었던..
이제는 꿈에서나 그 슬픈 섬을 봐야 하나 보다.
지는 해를 붙잡으며 기를 쓰고 바지락을 줍던 그 젊은 날도 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