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는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후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신경외과 전문의를 앞둔 레지던트 마지막 해,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2년간의 기록을 담은 바카라이다. 직업적으로 늘 죽음을 대면하던 외과의사가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비로소 죽음에 대해 대단히 몰입하며 성찰한 글이다. 아주대 이국종 의사가 극찬한 바카라이기도 하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영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의과전문대학원에 들어가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은 수재(문이과를 섭렵한)로써 1년 남짓만 지나면 여러 일류대학 교수로 채용될 유력 후보였다. 하루 열네 시간씩 이어지는 혹독한 수련생활 끝에 손에 잡힐 것 같던 그때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 바카라은 폐암 판정을 받은 후 죽음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결심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끝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진짜로 집중의 스퍼트가 올라가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비로소 아주아주 간절해진다. 필사적으로 몰입해서 생각하게 된다.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삶과 죽음에 대해 하게 될 통찰은 일반인들의 평생 분량을 압축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의 평생 분량을 압축해 놓은 몇 년간의 시한부 시간을 그는 최선을 다해 삶과 죽음과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한다. 치열한 현재의 집중이었다. 폐암 판정 후 2년간의 짧은 시간 역시 그에게는 당시 확정된 시간이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그가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며 그는 2년간의 시간 동안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허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건이 종료된 후에 사건을 재평가하는 버릇이 있다. 그만큼의 시간이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마의 진행속도는 치료과정과 본인의 의지와 별개로 불확실한 분량이기에 후견지명은 편향적인 판단일 뿐이다.
언제 죽어도 놀라지 않을 병마 앞에서 내가 놀랐던 부분은 비극적 상황에서 빛나는 그의 태도였다. 치료가 호전될 때는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 그에게 죽음은 예고된 판결이었다. 그의 주치의 '에마'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 찾도록 도와주었다. 병마로 가치관이 흔들리는 그에게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도록 좋은 질문을 계속해주었다는 점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
만약 나에게 제한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에마의 질문처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사는 질문이다.
폴은 삶과 죽음에 관해 도덕적인 견해를 세우려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탠퍼드대학 영문학에서 깨우치지 못한 자신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 의예과에 지원했었다. 그의 마지막 삶은 목적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던 무력한 순간에 문학은 활력을 찾게 해 주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직접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문학 작품이나 학술적인 연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은 그렇게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인 '일'과 '정체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이행한다. 폐암환자로 투병하다가도 잠시 경과가 좋아지면 다시 의사로 복귀해 수술에 참여한 것이다. 또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자신의 특별한 직접 체험을 언어로 옮기는 기록을 진행한다. 그는 레지던트 과정을 완수하지만 졸업식은 참석하지 못한다. 에세이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내가 바카라을 마무리한다. 죽음은 그렇게 그를 덮쳤고 그의 마지막 에세이집은 아내가 마무리한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빼앗겼지만 2년간의 집중된 시간 동안 아내와 예전과 같은 다정한 관계를 회복하였고 소중한 딸을 얻을 수 있었다. 폴은 딸 케이디가 태어난 지 8개월 뒤에 사망한다. 케이디에게 남긴 편지를 읽을 때 많이 눈물을 흘렸다.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아빠의 마음을 세상이 끝날 때까지 간직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욕망을 향해 달린다. 폴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카라임감이라고 해도 좋고 존재의 의미라 해도 좋을 것이다. 폴은 자신의 주체성을 수술실과 가족 그리고 직접체험을 남기는 글로 마무리했다.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의사로서의 존재 의무를 이야기하는 그의 글은 많은 울림이 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행동은 자신을 나타내는 의미이며 정신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삶의 의미는 찾을 수 있다. 의미를 찾는 행동이야말로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