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인생과 함께하는 명화이야기
이렇게 정신없고 번잡한 와중에도 페르메이르는 결코 장인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고가의 첨단 장치였던 '카메라 옵스큐라(원시적인 카메라의 일종)'를 구입해 이를 통해 그림의 구도를 잡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석을 갈아서 만든 파란 물감도 아낌없이 썼습니다. 1672년 프랑스가 네덜란드 공화국을 침략해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면서 심각한 경기침체가 네덜란드를 강타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페르메이르는 가난했지만, 여전히 청색을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일하는 데는 돈 아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미술사 속 거장들의 작품을 사람 중심으로 풀어놓은 인문 예술 도서다. 이 바카라은 미술 담당 기자로 연재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칼럼들을 모아 다듬고 미연재분을 추가해 탄생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어려운 미술사 지식 위주의 접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사랑하고 아파하며 시대의 고통을 견뎌낸 인물들로 추려내어 따뜻하고 친근하게 읽히는 것이 특징이다. 명화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 속 인생을 요약한 '사람 중심'의 미술 이야기가 독자층에 쉽게 다가가리라 믿은 저자의 의도다. 화가 27명의 인생을 읽다 보면 그들의 작품 탄생의 배경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애정이 묻어난다. 역시 인간은 스토리텔링에 끌리는 존재가 틀림없다.
'명화의 탄생'에는 화가들이 총 27명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후기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가들을 총 4가지 테마(사랑, 헌신, 고난, 일상)로 흥미롭게 엮어놨다. 안타깝게도 의술과 위생이 안정적이지 않던 시절의 화가들의 삶은 대부분 불행했고 단명했다. 저자는 이들의 전기를 담은 이야기와 어울리는 작품을 뽑아내어 그들의 삶을 정리했고 테마별로 삶을 나누어 독자들이 편안하게 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위대한 화가들의 인생을 요약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지만 방대한 참고문헌을 보며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유명화가를 둘러싼 전설들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진실처럼 굳어지곤 하는데 이 바카라을 통해 많은 부분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믿고 있던 모딜리아니의 '빈 눈동자 답변'도 소문이었다. 왜 빈 눈동자만 그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모딜리아니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겠다'라고 답했다고 말은 유명하다. '모딜리아니'의 화풍은 얼굴과 목이 터무니없이 길고 눈은 작은 아몬드 모양을 띄고 있다. 이는 단지 당시 미술계에서 일고 있던 '아프리카 원시미술 붐'의 영향이라고 한다. 젊고 잘생기고 방탕했던 천재 화가의 죽음과 불꽃같은 사랑이야기는 화제성을 띄며 모딜리아니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 시대의 격류에 휩쓸린 가난한 화가 '밀레'의 '만종'에 대한 진실도 여기서 확인되었다. 화가가 '감사 기도를 하는 그림'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죽은 아기를 추모하는 기도라느니, 밀레가 아기의 관을 그렸다가 지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정설이라고 한다.
밀레는 당시 프랑스 슬롯의 불안한 정치, 슬롯적 상황으로 미술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정치적 작품이라는 낙인으로 힘들었던 화가에 불과했다. 밀레는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치적 감각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분노하며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화풍을 믿고 자신만의 그림주제를 농촌에서 찾은 것은 위대한 결정이었다. 다행히 그는 50대에 이르러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죽기까지 최고의 화가의 영광을 누렸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미술사는 시대별로 표현 방식과 사상이 극적으로 변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혁신과 같은 미술사를 개척한 화가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술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경시적인 시선과 멸시는 자식과도 같은 작품에 대한 모욕이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당시 고정층이 좋아하는 미술풍을 거부하고 선구자의 숙명을 걸어간 화가의 인생은 그만의 철학적 고집으로 빛나고 있다. 근대 미술의 선구자이자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인생 이야기는 흥미롭다.
당시 미술계는 신화나 기독교의 성인, 영웅, 역사와 같은 영원한 주제를 그렸다고 한다. 정석적인 기법 외에 독특한 기법을 쓰는 화가들은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마네는 정답이 뻔한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정물화 대신 인물화로 도전장을 내민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이나 '올랭피아(1863)'은 역사화를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풍자할 줄 아는 능력자였다. 그는 스스로 증명하듯 새 시대의 화풍을 연 화가였지만 가족에게는 형편없는 가장이었다. 가족의 지지 기반을 잃었던 그는 미술작품으로만 영원한 명성을 지킬 뿐이다. 이처럼 작품 해설에 국한되지 않고 화가의 인생 후기까지 풀어준 저자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의 기억으로 화가와 화풍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에 화가의 인생스토리까지 덧붙이니 만족스러운 바카라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작품과 화가 두 명을 소개하고 싶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우유 따르는 여인(1660)'이라는 작품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다. 나는 평범함 속에 소중한 일상을 담아낸 그림들을 사랑한다. 저자 역시 테마를 '일상, 흔히 지나치는 것들에게서 찾은 소중함'이라는 part에 이들을 삽입했다.
정돈된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과 달리 페르메이르는 생계가 너무 열악했다고 한다. 열명이 넘는 아이들을 키웠으니 얼마나 번잡하고 정신없었을까. 그럼에도 일에 대한 열정은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남겨진 그의 작품이 빛나는 이유는 그의 철학의 결과다. 작품 속 환경은 그의 현실과 다르게 정돈되고 안정적이다.
또 한 명의 화가는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의 화가로 유명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르누아르는 하층민 집안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가족사의 불행으로 점철된 사람이다. 가난 때문에 첫 번째 연인과 헤어지고 딸은 입양시킨다. 두 번째 결혼에서 자식들이 세계대전으로 부상을 얻는 것도 부족해 아내를 잃고 본인도 순환장애로 한쪽 발가락이 절단되는 고통을 겪는다. 그는 몸이 반쯤 썩어가도 뜨거운 열정으로 오로지 세상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 운명이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끈질긴 집념으로 남긴 그의 작품이 4,000여 점이 넘는다고 하니 인간의 위대한 의지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화가의 삶을 이처럼 기억할 수 있는 여유는 화가의 작품성이기도 하겠지만 작품을 정리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고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만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한 작품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완성되기 때문에 화가의 감성과 철학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작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그림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성수영 작가는 '사랑, 헌신, 고난, 일상'이라는 테마로 그들의 그림이야기를 펼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