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연애, 편안한 준비

상견례를 앞두고



사계절이 있음으로써 편애하는 계절이 생겨버렸다. 비교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트럼펫을 불듯 여름을 찬양하는 능소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내겐 버거운 계절이었다.



어쩌다 나는 가을을 기다리는 여인이 되었나. 아무리 시원한 에어컨 바람일지라도 자연이 주는 가슴 뚫리는 바람과 견줄 수 없다. 그늘진 나무아래에 풀향을 담은 바람의 냄새는 또 어떤가. 횡격막을 한껏 들어 올려 한 모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선선한 초가을 오전 공기를 담는 공원 산바카라은 여름과 작별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공원의 나무들과 풀잎들, 그리고 계절감을 놓치고 작게 피어난 꽃들이 보인다. 더위에 지쳐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마음은 망각을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정신을 차린 환자가 된 듯 일정을 확인한다.






내년 봄이면 늦지만 조심스레 시작한 큰 아들의 결혼식이 잡혀 있다. 선선한 계절에 잡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늦은 나이에 만난 인연이지만 조용하고 아름답게 연애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이처럼 나도 행복감이 전염된다. 꽃처럼 활짝 웃는 아들의 모습은 지금껏 함께하며 지켜보지 못했던 감도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본 느낌은 아들과 같은 마음이다. 밝고 긍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품성이 마음에 든다.



데이트하기엔 다소 먼 거리임에도 사랑의 힘은 피곤함을 잊게 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편안함을 줘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자발적 자기희생이 아닐까. 아이들은 늦게 만난 사랑인 만큼 사계절의 제철행복을 꽉꽉 채우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서로를 배려하며 데이트를 정성껏 준비하는 모습은 매주마다 감탄스러움 그 자체다. 나의 공백기 여름에도 그 모습은 변함없었다.



스페인의 철학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금속은 소리로 그 재질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라고 말했다. 조용한 두 아이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하나씩 검소하면서도 실속 있는 결혼준비와 연애를 병행하며 즐기고 있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번의 말다툼이 없다는 건 놀라운 소식이었다.



결혼이란 오랜 시간 각자의 삶이란 공간에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생각의 틈이 벌어져있을 텐데 그것은 오로지 많은 대화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하나가 되기 위한 도전이지만 그것은 일관된 실천이 필요하고 흔들림 없는 신념처럼 서로에게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모두 가지려 쫓아다니기보다 직접 마주칠 수 있는 재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주의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마주하기 힘들면 피하는 여름처럼 자신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절제하는 삶이다. 조용한 삶은 서두르지 않게 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상견례일이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꽃바구니를 들고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