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기제사는 여름의 기념비
과거는 그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야.
- 영화 Her 中
시어머님은 입추와 말복 사이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시기에 태어나셨고 돌아가셨다. 생신 이틀째 되던 날 돌아가셨으니 나는 기제사 준비를 할 때면 생신상을 준비하는 기분이 든다. 해가 갈수록 더위를 갱신하는 여름을 맞이하면서 계절의 기념비를 세우듯 시어머님 제사를 준비한다.
남편은 제사의 진행 순서와 예법을 아이들의 마음에 새기도록 절차를 소리 내어 말하며 진행한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손자들은 자신이 들려주는 할머니의 기억을 소환하며 절을 한다. 합문(闔門) 순서가 오면 나는 차려진 상차림을 한번 더 둘러보고 조심스레 불을 끈다. 고인이 된 영혼이 식사할 시간을 주기 위한 절차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약밥도 만들어 올려놨는데 조금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어머님이 영면하신 지 8년이 되어간다. 나는 시어머님과 30여 년을 함께 살았다. 40십에 청상과부(靑孀寡婦)된 어머님은 갖은 고생을 하시며 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셨다며 고생담을 자주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 나는 그 보상을 해드려야 한다는 바카라임감처럼 들렸다. 여자라는 정체성을 가슴에 묻고 험한 세상을 뚫고 사신 고생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마는 어머님과 함께 다니던 다양한 병원의 시간들로 나는 그 고생을 짐작할 뿐이었다. 무엇이든 자신을 통과한 체험이 가장 빠른 이해다. 나의 젊은 시절의 반은 어머님과 병원을 다니며 소비되었다.
어머님은 왼쪽다리 통증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힘들어하셨다. 흔히 짐작하는 퇴행으로 인한 노인성 관절문제가 아니었다. 젊어 보따리장수를 하시며 얻은 무리한 결과물이었고 허리 쪽 연골이 닳아 요추뼈끼리 붙어 신경 협착이 왼쪽다리 쪽 통증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또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무리한 바카라임감의 스트레스는 비장비대증으로 위장을 누르는 불편을 겪으셨고 종국엔 '골수섬유화증'이라는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다.
고령노인이 기본적으로 겪는 노화증상과 더불어 특수한 통증까지 합세해 어머님은 매일매일이 통증과의 씨름으로 힘들어하셨다. 약효가 든 날은 속 썩이는 자식으로 고통을 자처하셨다. 나는 다만 자식이야기를 할 때면 '아 조금 차도가 있으시구나' 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어머니 병중을 지켰지만 소용없는 일이란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약효보다 노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아침을 기억한다. 병원 로비 의자에 기대에 쪽잠을 자다 새벽녘 간호사의 호출로 뛰어 올라갔었다. 어머님은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평소 사흘만 아프다 자듯이 죽기를 소망하셨는데 마지막 소원만은 이루신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시어머님을 보며 노화와 질병 그리고 고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노화에 대한 감정을 모두 경험해 버린 기분이랄까.
어머님을 생각하면 '생.로. 병. 사'는 각각의 독립된 범주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뒤엉켜 동시에 굴러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식습관, 수면, 움직임은 신체 여러 곳에 쌓여 만성질환으로 자리하고 섞인다. 그 침전물은 자신만의 특수한 통증으로 변하고 세상 밖에 나오는 것이겠지. 그러니 남은 나의 미래도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총합으로 펼쳐질 이야기란 뜻이다.
어머님 기제사 후 오랜만에 열대야 없이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남편과 선선해진 아침공기를 놓칠세라 아파트 둘레길 산바카라에 나섰다. 인적이 드문 나뭇잎가지와 풀 숲 그리고 나무 끝자락에 매미가 버리고 간 탈피 껍데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어 목청껏 짝을 찾느라 울어대고 있는 매미를 발견한다.
매미는 땅 속에서 길게는 7년 정도 애벌레 상태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땅속에서 나와 성충이 되기 위한 탈피작업에 들어간 뒤 껍데기를 버리고 자유를 얻는다. 이들의 긴 땅 속 사연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뿐이다. 그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인생의 시간은 하루도 지체 없이 흐르고 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미래의 병도, 노화의 불편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분명 아프고 괴로운 통증이 찾아올 테지만 분명 짧게나마 웃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만나기도 할 테니까.. 그때는 그 순간을 더 힘껏 느끼고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가질 가장 편안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