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는 나로 살아가기
마음은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입니다. 속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그 마음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에 맞춰 생겨난 마음일 뿐입니다. 세상에 슬픈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순간 '슬픈 나'가 생겼고, 화가 날 만한 사건이 벌어져서 '화난 나'가 일어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불경(佛經)이라는 이치(理)로 설명하는 바카라이다. 불경이라는 이치를 설명한다는 원론적 의미에서 이 바카라의 저자 보만 스님은 '심리학'이라는 말을 빌려 쓰고 있다.
이 바카라을 쓰신 보만 스님은 유튜브 법문 강의로 우연히 먼저 접하게 되었고, 궁금함이 쌓여 바카라을 읽게 되었다. 현대판 원효대사를 자처하신 듯한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이라는 소통으로 속세의 고민들을 재미있게 풀어 주셨다. 법륜 스님은 불교의 경전을 읽을 줄 몰라도 우리의 삶 속에 불교의 세계관이 깔려있음을 알려주셨다.
보만 스님 역시 불교 교리를 전파하려는 목적보다는 세상의 보편 진리를 깨닫는 근본 이치가 불경(佛經)에 있음을 설명하고 계신다. 법륜스님보다는 좀 더 체계적이고 원론적인 불경의 원리를 설명하신 뒤에 우리가 고민하는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고찰하는 식이다. 결론은 생사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의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고,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고민과 번뇌가 나타난 결과에 집중하고 치료를 원한다. 하지만 불교는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예컨대 마음의 구조를 보는 것이다. 불교는 현상과 존재를 구분해서 보라고 말한다. 현상은 분명히 느껴지지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생각은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상법(無常法)이라고 부릅니다. '항상(恒常) 하지 않다.', '영원한 건 없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도 결국 사라질 것이니, '이건 정말 좋은 생각이야!', '정말 별 볼 일없는 생각이네.' 하면서 서둘러 판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생각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생각에 심각한 의미를 두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이나 감정이 사실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남에도 그 생각이 마치 '나'인 것처럼 착각한다. 꽃을 보는 감각기관(眼)과 대상(色)이 만나야 이쁘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은 혼자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등의 경험이 전제된다는 점을 놓친다.
또한 고정되지 않는 생각이 걱정으로 다시 나타나는 이유는 그 기억이 '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분명히 말한다.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의 나는 과거에 집착해 온 '나'가 아니라 어떤 어리석음에도 물들지 않은 나이며 모든 생각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투명한 나가 바로 '진짜 나'라고 말한다.
온갖 기억과 감정, 생각이 켜켜이 쌓여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걷어 내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느끼고, 분별하고, 기억할 줄 아는 능력, 다시 말해 '깨닫는 능력'입니다.
불교에서는 좋은 생각만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과 나에 대한 견해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즉 올바른 견해의 옷을 입은 새로운 기억이 쌓이도록 정신(깨달음)을 갖추라고 말한다.
내가 맺는 세상과 나는 미래의 나를 결정짓는 '씨앗(종자)'임을 자각하며 살기, 그로 인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며 바카라임감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세상은 거대한 법칙(法則)의 원리로 움직인다고 말하는 불교의 진리는 든든한 산처럼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이는 연기법(緣起法)과도 상통된다. 불교에서 연기법은 우주를 관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다. 이는 자연과학적 관점에서도 설명되는 보편타당한 원리와도 같다. 원인과 결과는 필연성을 가진다는 점으로 깔끔한 진리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어 본질적으로는 하나라는 원리인 상즉법(相卽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기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지혜로움이란 '세상'이라는 현상을 보면서 그 이면의 '법칙'을 보는 사람이라고 불교는 말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고(苦)라는 의미다. 하지만 무상법(無常法)을 이해한 사람은 끌려가지 않는다. 그 고통을 나로 삼는 습관을 버릴 수 있고 그 고통은 가만히 두면 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