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애 주기와 함께하는 친구가 소중한 이유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편이 낫다. 우정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들이 친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며, 친구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 에라스 무스
어제 오래된 친구와 나는 각자 은퇴한 남편의 끼니를 요령껏 마련해 둔 뒤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했다.
백화점 식당층은 자유부인들로 만석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여인들이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시끌 법석 떠들며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자니 잔칫집에 들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꾸준히 연락을 하며 만나는 절친이 몇 명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 왔으니 쌓여가는 삶의 연식만큼 의지가 되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친구가 편한 점을 굳이 들라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달리 내가 내뱉는 말을 검증 없이 들어준다는 점이라 하겠다. 이기적일 수도 있는 나의 판단을 순수하게 지켜봐 주는 시선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뭉클한 마음이 일어난다. 언제나 가족을 돌보고 떠받치는 역할에서 돌봄을 받는 기분이랄까.
나와 친구는 서로의 삶의 궤적을 가을의 낙엽층처럼 켜켜이 알고 있다. 서로의 즐거움은 물론 가족사, 불행과 슬픔 그리고 고민들을 눈물 흘리며 들어주는 사이로 진화했다. 이 친구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시작과 끝을 아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오롯이 수용하는 친구를 대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혹시 좁은 틀 안에서 이해하며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있는 친구에게 혹시 나의 판단이 잘못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어느 순간 같은 마음이 되어 두리뭉실 자신의 사건들을 희화화(戱畵化)하고 시간을 즐기다 일어서게 된다.
친구와 했던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어려움을 다 통과했다는 말이다. 어떤 과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래의 일이니 지금 끌어와 고민하지 말자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할 뿐이란 사실도 확인한다.
우리의 삶에 친구는 꼭 필요하다. 나의 결핍을 용서해 주고, 너그러이 봐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저'에는 우정의 기원을 진화로 설명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혈연만으로는 종족 번식이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은 생존하기 위해 타인에게 손을 벌렸고 그것이 우정으로 평가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친구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우리의 믿음에는 자신과 유사한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해석이다.
문학에서보다 나는 과학교양도서에서 삶의 위안을 많이 얻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