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 이제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 채운아. 그게 설사 너와 같은 지옥에 있던 상대라 해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13년 만의 신작 소설인 김애란 작가의 글이다. 주인공의 치밀한 내면 관찰과 주변 상황들이 드라마 현장에 도착한 듯 생생하게 그려져 한 장 한 장 아끼듯 읽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생들로 가족이 해체된 가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엄마의 부재가 영향이 크다.
바카라 제목은 소설 속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고안한 일종의 자기소개 방법을 인용했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란 소개법으로 총 다섯 개의 짧은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되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신학기가 시작되면 담임선생님들이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어색한 첫 만남을 호기심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소개법이란 생각이다.
소설은 '채운'이 전학을 오고 자기소개를 하며 시작된다. 채운은 하나의 거짓말을 섞어놓는다. 그녀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웃는데 한 아이만 경직된 채 웃지 않고 있다. 곧 죽을 생명체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소리'였다.
이 소설은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가 두 달 남짓한 방학기간 동안 벌어졌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특별한 접점이 없던 평범한 세 아이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별개로 구성되어 흐르다가 어느 순간 연결되는 계기가 찾아오고 아이들은 서로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짓말이 비밀이 되고 그 비밀을 돕는 관계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 아이들은 각자의 비밀이 있다. '채운'은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들어간 '엄마'에 대한 죄바카라감과 자신이 범인이란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옥죄듯 무서운 것은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목격하고 이를 이야기로 재구성한 웹툰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는 사실이다.
'지우'는 그 웹툰을 그린 사람이다. 지우는 채운과 같은 빌라에 살고 있고 우연히 경찰차가 오고 사람들이 웅성이던 사건의 빌라 옥상에서 내려다본 증인이다. 사물의 표정과 상황을 내밀히 관찰하는 능력이 있는 지우에게 '채운'은 엄마를 버리고 간 '아빠'를 죽이고 싶던 자신을 대신한 능력자로 보인다. 지우는 암에 걸리자 자살을 선택한 엄마를 원망하고 오로지 반려 도마뱀(용식) 한 마리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다.
'소리'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나 동물의 손을 잡으면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는 능력이 있다. '채운'의 강아지의 죽음도 미리 예견했고, 채운이 치명상을 입혀 입원한 아버지도 죽음도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오랜 병색에 힘들어했던 엄마의 죽음은 예견하지 못한다. 소리는 지우의 도마뱀을 임시로 키워주다 어느 날 도마뱀 용식의 죽음을 발견한다.
누구나 크고 작은 불행의 경험을 체(體)화하며 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개인의 불행을 나는 모성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적인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어머니라는 가족의 중심은 모성적 원리로 굳건하게 자리한다. 특히 성장기 아이에게 어머니라는 성이 상처 나고 무너지려 하거나 스스로 무너진다면 그보다 절망적인 현실은 없다고 본다.
성장기시절 전쟁 같은 부부싸움을 말리던 나도 실질적으로는 엄마를 지키려 했었다. 취기 가득한 거인으로 변한 아버지를 상대하기엔 엄마는 작고 연약했다. 이기적인 어른들은 가혹한 이러한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우뚝 일어서라고 냉정히 조언하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이 어른의 세계관이라면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채운 엄마의 편지와 지우의 사실혼 아빠인 '선호 아저씨'와의 대화를 빌어 소설은 조심스레 가족의 해체가 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떠나지 말고 버리라'라고 말하는 냉정한 말속에는 가족의 화합으로 자신을 속이느니 가족을 버리라 속삭인다.
세 아이는 어른들의 조언을 숙고하면서도 서로의 비밀과 거짓말의 교환을 통해 자기 삶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거리감을 배우게 된다.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죄의식, 분노, 집착 등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삶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성장은 거짓말의 가치를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해 우리 셋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고
처음으로 가까워졌다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