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을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 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하는 자바카라 하다가도, 자본주의 슬롯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 그저 약간의 선의와 교양으로 가끔 어딘가 기부하고, 진보 성향의 잡지를 구독하는 정도로 우리가 좋은 이웃이라 착각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 좋은 이웃 中
자본주의가 패권(覇權)을 잡은 이후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맞춤형 해석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그들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일치하다는 이론과 함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를 탄생시켰다. 능력주의는 '목적'에 집착한 전투와도 같은 삶을 요구했고, 인간 내면 깊숙이 의식화되기에 이르렀다. 성공을 신봉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경제적 인간'과 '능력주의'로 인생 프레임을 짜면 무엇이 문제인가.
'에리히 프롬'은 일찍이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을 난폭하게 유린하여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슬롯에서 성공하려면 수많은 변수와 시대적 환경적, 구조적 조건이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최고조로 완성되기까지의 고성장 착시 결과물에 빠져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작동하는 것처럼 믿고 있다. 성공에는 '운'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일곱 편의 단편이 묶여 있는 김애란 작가의 이 소설집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돈과 이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해설을 멋지게 해 주신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읽었다. 우리가 이 소설집을 읽고 주인공의 마음처럼 허전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이유는 경제적 인간의 절대적 가치에 수긍하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지배종이 된 강력한 이유를 알고 있다. 인류진화에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친화력(다정함)'이 강력한 선택압이었다는 사실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맞춤에 의존해 살아가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 그 증거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으며 가족 이외의 집단 즉 '좋은 이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종(種)이다.
이 소설은 그 공동체 '이웃'에 대한 시대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집을 1980년생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관찰하며 읽었다. 우리나라는 세대별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곱 편의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40대 중후반을 살아가는 인물들로 현재 한국슬롯 경제를 중추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이다.
1980년생들은 초등이나 중학생시절 IMF라는 외환위기를 부모세대가 겪는 것을 보며 성장했고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를 청년기에 경험한 세대로 경제적 불확실성을 가깝게 경험했다. 이들은 부모세대의 아날로그 감성과 기술적 패러다임을 성장기에 경험한 세대로 경제적 대응력의 필요성과 재정적 신중함을 고루 갖춘 예의 바르면서도 내가 중하니 남도 중하다는 생각을 하는 보편타당한 개인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에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매너가 좋은 것이다. 바카라 속에도 나오지만 빌린 숙소에서마져 깔끔하게 청소를 한다던지, 죽기 전 도배를 하면서까지 주변정리를 한다. 이들은 성공한 이들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주진 않지만 정당하지 않은 대우에는 반발심이 있다. 바카라을 읽으면서 내가 온라인 게임 생활할 당시 80년생의 후배동료의 성향들이 떠올라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 대응력과 재정적 신중함을 갖춘 그들에게도 속수무바카라 시대적 변수는 작동했다. 크게는 2020년 전후 코로나 팬더믹과 수도권을 휩쓴 아파트값 폭등사태 그리고 오피스텔 빌라 전세사기(빌라왕) 등이다. 작가는 이 거대한 변수의 소용돌이에 갇힌 주인공들의 감정을 대변한다.
김애란 작가의 특별함은 예상되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도 단단히 붙잡는 감정적 표현이 실감적이란 사실이다.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인간 본연의 감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만이 살아가야 할 이유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적 선택압으로 작용했던 '좋은 이웃'으로 돌아가라는 '다정함'의 권유이기도했다.
'좋은 이웃'에서 독서지도사로 장애학생 '시우'와의 인연을 이어가던 중 정독한 소설을 나누는 시간에 우리들 가슴을 찌르는 대목이 있다. 남태평양 무인도 한가운데에 홀로 조난당한 여성을 공동체 이웃 섬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구하는 소설에 대한 독서수업이었다. 공동체, 이웃, 연대 등 핵심단어를 이해하라고 가르치는 수업 중 중에 시우는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은 다 믿어요? 이 바카라에 있는 말들."
우리는 분명 그렇게 배우고 성장했다. 다 이해했고 학습하고 실천만 하면 되는 어른이 되었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다.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라는 공사 안내 게시물 안에 인사말은 적을 수 있지만 공사시간을 조율해 달라는 이웃의 요청은 내 알바가 아닌 뒷전이 되었다. '숲 속 작은 집'이란 소설에서처럼 팁을 주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메시지가 감사의 마음표시라기보다 의례적인 표시로 전락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는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공허'라는 허무감을 선물한다. 재미없다, 의미가 없다, 허무하다 등등 각자의 경제적 위치에서 달려온 시간들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이라는 낙담 속에서 두 가지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포기 아니면 시작이다. '빗방울처럼'에서 필리핀 도배사 아주머니가 자살을 기도하려는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안부를 묻는 문장이 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가 빠진 담백하고 진심 어린 물음이다. 그 마음 하나는 경제적 지원보다 큰 위로와 힘을 담고 있는 다정함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돌봄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