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과학이 물질적 풍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과학 낙관주의가 고조되었다.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은 과학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각인하는 계기였고, 의학 역시 생명을 연장하는 진정한 능력의 학문이라는 기대가 갈수록 높아만 갔다. 바카라 말미에도 출간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연구윤리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1959년 출간) 속에 이 소설이 탄생한다.
실제로 하버드와 MIT 대학에서 합동으로 수년에 걸쳐 주립학교에 다니는 장애를 지닌 아동들에게 방사능 추적표시가 달린 시리얼을 먹이는 실험이 가행되었다고 적혀있다. 연구팀은 철분과 칼슘을 흡수하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문제는 방사능 노출 언급을 주지하지 않고 실험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문학은 집필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보다 깊이 작가의 진심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찰리'는 33살 지적장애(IQ 68)를 가진 순수한 영혼의 청년이다. 그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빵집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항상 긍정적이며 사람들을 잘 믿는 성격이다. 찰리는 지능이 낮지만 누구보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매우 높다. 인간의 지능의 끝을 갈망하던 의학계 연구팀은 천재로 만드는 실험대상을 찾던 중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임상시험 적임자로 '찰리'를 선택한다.
동물실험에서 최초로 성공한 쥐의 이름은 '앨저넌'이다. 찰리는 처음 엘저넌과의 대결인 미로 찾기에서 완패할 정도로 지능이 낮았지만 수술 후 빠르게 학습능력과 사고능력이 향상되었고 생각과 감정표현도 지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 소설은 찰리가 수술을 받고 스스로 경과보고서를 작성하는 3월부터 11월까지의 기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찰리의 경과는 의학계와 학회로부터 놀라운 성취감을 주게 된다. 그는 IQ 180이 넘는 지능 수준이 된 것이다. 8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어려운 논문도 다재다능하게 섭렵하여 교수들을 능가하는 대화 수준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실험성공사례의 구경거리일 뿐이다. 학회에서 앨저넌과 찰리는 인격체로 서있지 않았다.
찰리는 학회에서 실험용 쥐였던 '앨저넌'의 행동 부작용에 대해 처음 알게 되고 자신 또한 실패할 경우 엘저넌과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란 사실도 깨닫는다. 실험이 실패할 경우 엘저넌은 소각로에서 처리되고 찰리는 지적장애인들의 시설인 '워렌'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우리가 약효에 매료되어 희망을 찾지만 부작용의 피해를 겪고 뒤늦게 놀라는 이유와 같다.
앨저넌은 시간이 갈수록 지능이 떨어졌고, 벽에 몸을 부딪쳤고, 어느 날 죽는다. 찰리는 연구팀이 손을 쓰지 못하도록 숙소 뒷마당에 엘저넌을 묻어주고 꽃을 놓아준다. 모두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법 같던 천재성도 빠른 약효만큼 시한부란 사실을 깨달은 찰리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의 경과보고서를 읽는 과정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퍼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인간의 비윤리적 욕망이 순수한 영혼을 망치고 뭉개고 사라지게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능의 끝을 붙들고 쓰는 마지막 경과보고서에 찰리는 추신으로 '엘리스 무덤에 꽃을 좀 놓아달라'라고 적으며 이 소설은 끝난다. 바카라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현대인에게 던지는 작가의 외침이기도 하다.
'뇌수술을 받고 지능을 높일 수 있다면'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빠른 효과를 요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에 타격감을 주며 끝난다.
실험을 통해 얻은 증거가 임상적으로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일반적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외적 타당도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 목표라면 지능이나 여타 조건과 상관없이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윤리의식이 기본값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찰리는 아무도 한 생명으로 존중해 주지 않은 실험용 쥐를 땅에 묻어주고 애정의 마음으로 무덤에 꽃을 올려놓았다. 우리가 공부하고 학습하고 인격을 높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찰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지능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지능이 높아지면 우리의 뇌는 자연적으로 똑똑한 과제를 처리하는 뇌 연결망이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다.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 되고 과거 잠재의식 속 숨어 울던 내면 아이의 고통을 발견하고 치유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지능은 그렇게 활용되어야 한다.
찰리는 빠르게 지능이 좋아졌고 빠르게 퇴화했다. 삶의 끝자락까지 경험한 찰리는 과학 분야에 오류를 정확히 찾아내 분석자료를 만들어 제출했고, 사랑을 확인했고, 잠재의식 속에서 왜 그렇게 '똑똑하고 싶어'했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찾아내 치유했다.
과학의 발전에 방향성을 일깨워 주고, 현대인에게는 삶의 의미를 순수한 찰리처럼 갈구하고 찾아내며 살고 있는가, 질문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