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선행학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적절한 좌절을 겪으며 자율성과 자아 경계를 키워가듯, 이처럼 좌절은 처음부터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내 한계를 인식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어릴 적엔 부모의 응답 속에서, 어른이 되면 관계와 슬롯 안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실패와 좌절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성장하는 지점입니다.
부모의 애착이 과잉인 대한민국 가정에서 지금 당장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좌절'이라고 조언하는 바카라이다. 내 아이만큼은 좌절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지나친 사랑이 아이의 성장과 독립을 막고 오히려 망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애착이라는 부모의 간섭이 사랑으로 포장되어 과도한 통제와 개입으로 이어지면 아이는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부모는 아이가 힘들다고 말하면 모두 들어주고 대신 결정해 주고 넘어지는 그 자리도 잔디밭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체는 물론 마음의 상처까지도 노심초사한다. 치열한 경쟁 슬롯에서 성공만이 자기를 증명하는 가치로 판단되면서 조기교육만이 실패한 인생을 피하는 설계로 믿게 되었다. 그 목표는 사실 명문대 입학이 종착지인 학원가의 KPI일 뿐이다. 부모가 그들의 목표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우리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더 많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의 미래를 감당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조기 교육 속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학습기계로 성장한다. 교주인 부모의 말을 들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분리-독립의 개념'의 단계를 생략하고 사춘기를 맞이할 때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한다. 불안정하게 형성된 아이의 인격은 어른이 된 후 힘든 노력이 없는 한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도 이 패턴을 반복한다는 점에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이하면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미분리된 애착의 흔적이 또래 아이들과 복잡한 감정과 얽혀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자기 인식이 자라지 못한 채 자아 발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심리발달 진도가 유치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한국슬롯의 양육의 형태가 타율적이고 극단적 억압을 받아 조절욕구로 힘들었던 세대의 업보(業報)라고 생각한다. 피임이 불가능했던 시절, 다자녀 가구 속 아이들은 부모의 애정은커녕 올바른 양육을 받지 못하며 자랐다. 그 시절을 지난 어른은 정서적 지지와 무조건적인 애정을 내 아이에게 주는 것이 부모의 바카라임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핵가족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발행된 양육서를 현재까지 맹신하는 것을 걱정했다. 당시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헌신적인 사랑이 올바른 양육이 아닌 것이다. 아이는 해마다 성장하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 발달을 관찰하며 단계별 교육을 해주고 아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는 강조 한다. 시대는 바뀌었고 애착보다 분리-독립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잠자리 분리와 이불킥의 시간
잠자리 분리는 단순한 공간적 독립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한걸음 떨어져 자신만의 정체성과 감정 세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부모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아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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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한 분리-독립이 이루어지는 과정까지, 이 과정 전체를 넓은 의미에서 적절한 좌절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적절한 좌절이란 세상이 내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심리학자 '마거릿 말러'의 '분리 - 독립이론'과 정신분석학자 '하인츠 코후트'의 '적절한 좌절'을 소개하는 챕터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건강한 자아가 성립되는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과잉보호'단계는 3세 이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 돌봄 방식인 단계를 학동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종국엔 아이들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자기 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심리적 연령'을 부모는 스스로 정하고 최소한 취학 전 '잠자리 분리'와 '식사예절'을 가르쳐야 한다고 저자는 권한다. 식사예절은 슬롯화의 기본 중에 기본으로 다른 사람들과 시간대를 공유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강조되는 '혼자 자는 경험'은 유아기에 자기 위안 능력과 감정조절 그리고 스트레스 대체 능력을 길러준다고 한다.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가 가동되는 시간이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인 잠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외부 자극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후회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르는데 뇌는 과거로 돌아가 복기하면서 부정적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부끄러웠던 자신의 행동의 상기로 이불킥을 하겠지만 그 시간은 '내가 관계에서 조절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개념이 잡히는 시간이다.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면 '잠자리 분리'라는 양육방식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도 덜 힘들다. 엄마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의 공간, 즉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최초의 공간에서 아이는 친구관계는 물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곳이 아님을 적절한 좌절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 관계, 즉 대인관계는 거리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이킥 디스턴스 psychic distance, 즉 정신적인 거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친밀한 관계가 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부담스럽지 않은지가 대인관계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어디서 만들어지느냐 하면 바로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또한 저자는 부모 어느 한 사람의 양육이 아닌 엄마, 아빠 모두의 육아에 관심과 참여를 강조한다. 엄마, 아빠가 공통되고도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아이도 혼란이 없고 훗날 관계회복으로 고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아빠가 굉장히 바빠 엄마가 육아를 전담한다면 최소한 정보라도 아빠와 공유해야 한다.
분리-독립 개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설명된 바카라이다.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도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슬롯에서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어른임을 알 수 있다. 각자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애착 경험 속에서 반복된 좌절이나 보상의 양상이 수많은 정서적 경험들과 얽혀 나이와 상관없이 미성숙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바카라의 2부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자아로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어른의 사례를 보여준다. 위태로운 자아를 가진 어른이 얼마나 슬롯 속에서 병들고 힘든지 알게 되는 시간이다. 위태로운 나르시시스트, 거부 민감성, 관계적 공격성,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등 적절한 '분리-독립 과정'을 아동기 때 경험하지 못한 채 흔들리는 '거짓 자아'로 고통을 받는지 보여준다. 희망적인 것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늦었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점이지만 너무 늦은 수정은 그만큼 힘든 고통의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분리-독립 과정'은 세상밖으로 나가기 전 양육받아야 할 아이의 권리이자 부모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