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함의 심리학

착한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하찮게 여긴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본래의 자신을 억누르고 주위에 적응하여 주변 사람들 마음에 들도록 자신을 형성한다. 이를 나는 '보상적 자아'라 부른다. 자기감정이나 욕구보다도 상대 감정이나 기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우선하는 모습이다. 무가치함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상적 자아 역시 견고하게 형성된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감각을 '자기 가치감'이라고 말한다. 자기 가치감은 타인과 비교해 자신이 열등한 점이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무조건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감각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가치가 부당하게 훼손되는 일에는 저항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자신의 가치가 흔들린 경험이 반복되면 스스로를 가치 없고 하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가치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 바카라은 무가치함의 유래 및 그에 따른 위험성을 알리고 '자기 가치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바카라이다. 읽으면서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해당되는 애착유형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많은 부분 유사한 내용에 놀라며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위로 언니가 둘이라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성장했다. 맏며느리였던 엄마의 직설적인 푸념은 4년 터울로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미안함에서는 벗어났지만 착한 아이라는 '보상적 자아'에 기대야만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보상적 자아'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으로 비치는데, 이들은 자신을 친절하고 참을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내면에는 상냥함이 아닌 '무가치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무가치함은 자가증식하여 죄바카라감으로 번지고 자신을 바카라임감이라는 덫에 걸려 살아가게 된다고 지적한다. 모두 내 얘기라 놀라웠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그 성격 때문에 불필요하게 죄바카라감을 키워간다. 그것은 주변 기대에 부응하려는 바카라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부과된 업무에 대해서는 투철한 바카라임감으로 해내고, 그럼으로써 주변의 평가와 신용을 얻는다. 그러면 그에 힘입어 업무에 대한 바카라임감이 한층 더 강해진다.




나는 사춘기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여러 도서들로 인해 '나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됐다. 부모는 적응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란 사실과 부모와 나와의 성향은 같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부모에 대한 원망을 해봤자 이득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내린 답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보상적 자아'로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서운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시 안정적으로 애착을 주지 않은 부모에 대해 이렇게 변호를 한다.



부모의 마음에도 여러 갈등과 상처가 있다. 그래서 그 갈등과 상처를 자극할 만한 성격의 아이와는 거리를 두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열등감이 강하고 미숙한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면 기분이 상해서 아이에게 공감하려는 태도를 잃고 만다.




유년시절 불완전한 부모들로부터 강요된 무가치감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아이는 소극적인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이 되었어도 부모에게 혼나거나 거부당했던 감정들이 무의식적으로 되살아나 부정적 감정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자기 가치감을 잃은 사람은 늘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모를 원망하고 나의 무가치함을 부모탓으로 돌릴 것인가. 바카라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을 발견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대목이 있다. 그것은 완전하지 않은 부모였겠지만 분명 의도나 바람을 가지고 아이를 대했을 거란 이야기였다. 단지 그 의도와 바람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이는 아이가 믿고 해석하는 형태로 내재화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자신의 소망을 기반으로 부모행동을 해석했을 여지였다. 그럴 수 있겠다. 어린아이는 부모를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바라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정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감정은 그 방식에 따라지며 그 방식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자꾸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불행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스스로 하며 성장했다. 사춘기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스스로 의식해서 선택적으로 행동했다. 친구도 내가 선택했고 진학도 실력 내에서 내가 결정했다. 온라인 게임은 물론이고 배우자도 그랬다. 지금의 내 모습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결과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무의식에 남아있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떠나보내야 한다. 나의 인생을 주도하고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이상 언제까지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바카라임을 동반하는 과도한 부담은 자기 내부에 자리한 어린아이의 무력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가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쓸모 있는 인간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수단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응석과 의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 정서적 빈곤이 늘 마음 한 구석을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나의 위치를 일찌감치 인정하면서 나의 미래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시지프의 신화'에서 카뮈는 '삶은 양이 질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 더 잘 경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무가치함을 느끼는 사람은 온갖 것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만큼 더 지치게 살아간다. 유한한 삶이라는 확정된 시간 속에서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중요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인생설계를 제안한다. 100세 시대이니만큼 몇 살에 시작하든 늦지 않다고 격려한다. 나에게 현재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집중해야 하는 인생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양의 노력들이 무궁무진하다.




무의식적으로 성처받은 경험이 떠올라 무력해질 때가 올 수 있다. 저자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할 때 셀프 토크로 기운을 내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 어른이다. 무력하지 않다. 그러니 괜찮다.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무가치함의 심리학 / 네모토 기쓰오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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