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가 유물이 되기 전에

박수받으며 떠나려면 행동하라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은 그걸 한 것 자체이다.


- 세네카





언젠가부턴가 나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휴대폰을 끼고 산 착각을 한다. 세상 밖 소식을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휴대폰 하나로 해결한다. 휴대폰 하나면 지하철 탑승이든 은행업무든 구매결제든 일상의 모든 불편을 해소한다. 내 휴대폰 이미지 저장폴더엔 철마다 이쁜 자태를 뽐내는 화려한 꽃들이 가득하다. 지자체에서 빠짐없이 꽃축제 알람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5월 중순경에는 중랑천 일대를 장미꽃으로 뒤덮은 축제에 다녀왔고, 6월 초에는 서울대공원 장미축제까지 빠지지 않았다. 축제답게 각자 주인공인 되려고 애쓴 꽃들과 정원사의 정성으로 축제가 빛나고 있었다. 아내가 꽃을 보고 감탄하는 그 외마디를 들으며 남편은 할 일 다한 사람처럼 흐뭇해했다.



인파에 시달리면 감상이 저감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우린 보통 평일에 움직이는데, 꽃 축제기간은 예외인 것 같다. 꽃 축제기간이 한정된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평일에 일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문화, 예술 등 의미 있고 즐거운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자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슬롯로 진보된 것이라 생각한다.



중랑천 장미축제를 보러 가기 전 우리는 주차시설이 부족할 것이 예상돼 '한국생활사박물관'에 일찌감치 들러 주차를 하고 걸어갔었다. 입구서부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화려한 장미꽃들에 압도되어 좋아한 것도 잠시 장미 터널을 많은 인파에 떠밀려 움직이다 보니 순간 피로가 몰려와 나는 포기하듯 남편의 손을 이끌었다.



그러다 주차장에 향하기 전 건물 내 전시물을 보게 되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풍경과 함께 서울시민들의 삶이라는 주제로 전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유년시절과 청춘을 기억하는 유물들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재건되는 1960년~1980년대의 서울을 담은 모습을 보노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랄까. 조금 전 세련된 거리와 한가히 즐기는 시민들이 과거 속에서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는 현재를 과감히 반추하듯 비교하게 만든다.



10여 년 전만 해도 박물관이나 전시관에는 우리 부모세대의 생활양식 물품들과 초가집 그리고 물레방아가 대세였는데 이제 우리의 역사로 교체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퇴거를 앞둔 쌓인 이삿짐을 의미했다.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자각은 과거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교육받은 대로 성장하듯이 과거의 판단을 근거로 현실에서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많은 지표들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확인시켜주고 있다. 나는 진정한 선진국 문화란 느슨한 정서의 연결 즉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심이 공유되는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바카라을 읽고, 생각을 다듬는 이유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확신을 얻기 위함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다정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초고령슬롯로 접어들면서 한국슬롯는 역사 이래 최초로 다양한 연령층과 공존하고 있다.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중산국 그리고 현재의 선진국을 살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까지 한 공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 부침 속에서 변화에 대한 적응이 생존과 맞물려 있었다. 걱정되는 것은 압축성장으로 발전된 한국슬롯가 되었지만 세대 간 소통 방식의 정보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점이다.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공통의 경험자산이 빈약하고 소비되는 정보도 확증 편향으로 심화되고 있다. 각자 열심히 사는 것은 분명한데 서로의 가치관과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모두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세상이 바뀌었다면 바뀐 위치에서 시대적 한계를 깨닫는 슬롯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대적 인식이 낙후되고 노후되어 있다고 판단이 되면 과감히 바꾸기를 시도해야 한다. 나는 모든 세대가 공존하는 지금의 시대야말로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합의적 세대교체의 필요성이다.



우리는 누구나 현명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노인은 죽음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흔적을 후세에 남기고자 한다. 유산을 남기려는 경향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빈부 격차를 어려서부터 체험하며 성장한 우리의 청년세대들은 기존 체제에 대한 반응이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다. 자신에게 기회가 없다는 적개심은 보편성이 사라진 슬롯에 대한 절망이다.



우리 모두 생각을 다듬고 서로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역사의 뒷자리로 차지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자신만의 행복을 좇는 짧은 만족감 이면에 놓치고 있는 자신과 타인의 단단한 감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삶 속에서 수많은 체험을 통해 '절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몸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대부분 스트레스가 얼마나 정신과 신체를 해치는지 알고 가급적 느슨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최소한 당위적 사고에 사로잡혀 고집스럽고 사고전환이 어려운 꼰대로 살지 않으려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서번트 리더십이 근래 자주 거론되고 있다. 기존에 전통적인 위계질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달리 서번트 리더십은 조직도를 뒤집어 리더를 밑바닥에 배치한다. 구성원의 주체성을 살리도록 리더는 집사처럼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운영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가치 있는 구성원 간의 신뢰 관계는 돈독해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인재에게 열린 피드백을 받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세대 간의 공감은 물론 지속 가능한 경영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기업경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꿈을 갈망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물질적 재산만이 유산이 아니다. 그래야 박수받으며 퇴장할 수 있다.




배를 만들고 싶으면, 북을 쳐서 사람들을 불러 나무를 모으게 하고 임무와 노동을 할당하기보다는 바다의 끝없는 광활함을 가르쳐서 그것을 갈망하게 하라.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