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해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 에리히 프롬
출생순위에 따라 아이들의 성격이 다르게 형성된다고 '아들러'는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 아이는 부모에게도 첫 번째 실험대상이라 목표지향적 강제적 훈육이 이루어지지만 둘째부터는 부모의 경험치가 정착되어 선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각 아이의 심리적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면 가끔 나는 심리적 이론과 별개로 한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의 성격이 많이 다른 것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밝은 둘째와 첫째에 대한 나의 훈육이 바뀌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해보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당시의 조건에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키울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첫째 아들은 아들러의 심리이론에 부합하듯 바카라임감과 인내심이 강한 내향적 성격으로 성장했다. 과묵함인지 의젓함인지 헷갈릴 정도로 질문하지 않으면 도통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웃기만 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학자라는 진로를 일찌감치 선택한 영향 때문인지 동생과 달리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본인도 외국을 이렇게 많이 다닐 줄은 몰랐다고 할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고독처럼 굳어갔다. 화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물으면 '괜찮다'라고 늘 답변이 돌아왔지만 나는 그 답변 외에는 표현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과묵한 아들이 요즘 누구보다 잘 웃고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늦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첫사랑이다. 늦은 나이 덕분에 흥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살짝 딱하기까지 하다. 아이의 정신은 온통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있어 보인다. 그것이 사랑의 도파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활기찬 긴장감이 좋기도 하고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아들의 가치관과 태도가 비슷한 사람을 짝으로 만난 것 같다. 자신을 대하듯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내 아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내게도 고마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이제 나보다 짝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순간 나는 2순위가 되었다. 어미의 당황함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있는 아들이지만 나는 서운하지 않다. 아들이 정말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이의 인생이 풍부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며칠 전 구글 알고리즘이 지난날 찍은 사진들을 알람으로 보내왔다. 습관처럼 추억을 더듬듯 보다가 작년 큰 아들의 웃는 얼굴과 요즘 아들의 웃는 얼굴을 비교하듯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웃음의 감도가 사랑에서 얻은 행복한 웃음이라기보다 부모의 부담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질문한다. 지금껏 아이는 부모와 슬롯에서 요구하는 당연하다 믿는 단계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힘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힘들다는 말조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로웠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안전한 단계라 믿었던 도착지가 빈 공간처럼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부모자식 관계에 있어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고 어제까지 적절했던 방법이었을지라도 오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계속해서 성장하며 자기를 찾아내고 부모는 자신이 믿었던 가치관을 믿으며 늙어가는 차이처럼. 서로가 처음이라는 불안을 견디며 믿고 의지할 뿐인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부모의 판단과 믿었던 자신의 선택에 지루해진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사랑은 스스로의 의지로 인식한 가치라 말할 수 있다.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줄 아는 자의식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