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과 웃었던 시간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법칙의 유일한 주체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행복의 기원 / 서은국
벚꽃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봄날도 철쭉의 개화로 잊히고, 이제 거리는 제세상을 만난 듯 새하얀 이팝나무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조증에 걸린 듯 꽃들의 이어달리기가 어찌나 속이 보이게 귀엽던지 덩달아 즐거운 기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5월이 되어서야 4월 한 달을 꽉꽉 채웠던 꽃들의 그림 스케치 단계가 넘어간 듯 흥분이 멈추었다.
4월 마지막 주에는 남편과 결혼한 지 36주년이 되는 날이 있었다. 화려한 꽃들이 담뿍 담긴 꽃바구니와 세상 화려한 케이크를 아이들로부터 받았다. 남편과 아들 둘과 살며 나는 정확한 요구만이 나의 의사가 전달된다는 것을 안 뒤로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있다. 눈치껏 챙겨주길 바라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할 뿐이다. 나의 요구는 꽃바구니와 케이크 그리고 가족외식이다. 우리는 그날 뷰 좋은 한강 음식점에서 편안한 외식을 하며 축하를 나눴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축하하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 몇몇 생기 있는 꽃들을 병에 옮겨 담고 있는데,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작은 아이는 온라인 게임에서 꽃꽂이 수업을 신청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만들어 왔다. 자식이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 한 조각을 보기 위해 기꺼이 꽃꽂이 강습을 신청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편에 따뜻한 모닥불이 지펴졌다.
그리고 지난 주말엔 둘째 형님 칠순행사가 있어 논산 탑정호 근처 펜션으로 가족모두 이동했다. 차 안엔 형님에게 드릴 꽃바구니 향기가 가득 찼다. 기쁜 날엔 꽃바구니가 배경으로 적격이다. 예상대로 형님은 꽃바구니를 안고 소녀처럼 기뻐하셨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뿌리인 자식들과 그들의 자손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의 얼굴의 합 속에서 태어난 조각들을 멀찍이 서 둘러본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상밖으로 내놓은 어머님을 떠올리며 울고 웃는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젊어 차별적이었던 외모들이 비슷하게 변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아, 유전의 힘이여.
인간의 삶은 생존과 번식으로 단순하지만 강력한 원칙으로 세상을 살다 죽는다. 정해진 죽음이라는 엔딩을 향해 살다가 각자의 욕망이라는 행복을 찾다가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어머님은 잘 사시다 가신 걸까. 그리고 칠순이라는 인생의 후반부를 넘기고 있는 어머님의 자식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행복의 기원'이란 바카라에서 인간은 사실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정의하지 않았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일 뿐이라 했다. 우리가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나누는 것도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논리였다. 그렇다면 행복은 생존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저자는 행복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생존하기 위해서 절대적 자원인 '사람'과의 즐거운 관계를 맺으라고 강조한다. 그것이 행복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 자신의 행복이라는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우고 욕망한다.
시어머님의 세상은 끝났고, 당신의 자식들의 세상도 노화되어 저물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깊게 파인 주름들은 삶의 풍파를 증명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 행복할 것이라 느껴졌다. 오랜만에 모두 모인 형제들이 회포라는 갈증을 풀도록 나는 아이들과 멀리 탑정호가 보이는 펜션 뒷길을 조용히 산바카라했다.
나의 생존과 결부된 행복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깊이 습관이 된 익숙한 감정을 자주 느끼다 보면 그 감정을 느낄 상황이 아닌데도 습관이 된 감정이 나타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화를 자주 내던 사람은 슬픈 상황임에도 화를 내고 우울한 감정이 습관이 된 사람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자바카라하고 슬퍼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우울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웃으며 살고 싶었다. 웃으려면 자주 축하할 일을 만들어야 했다. 습관처럼 감정을 만들기 위해 작은 일도 대단한 일로 만들어 축하했다. 예컨대 아이들이 문제집 한 권을 다 풀면 바카라거리로 축하를 해주는 식이었다. 작은 축하는 빈도가 잦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웃음에 익숙해졌다. 나는 그렇게 생존했다.
시골 밤하늘은 짙었고 별들이 총총 반짝였다.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