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산문집
그 문학은 하나의 선善을 편드는 문학이 아니라, 이제 막 사람들 앞에 선 당선자의 허영, 그 헛폼 안에조차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손들어주는,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그 팔 안에서 나는 여전히 실수하고, 깨닫고, 배우면서 살아간다.
지난 4월 15일 '손석희의 질문들'이란 프로그램에 '김애란' 작가가 출연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만난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선명하게 전달되는 저음이 매력적으로 들렸다. 요즘 일상 곳곳에 빠짐없이 회자되는 AI의 침범에 대한 앵커의 질문은 문학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답변은 문학이 할 수 있는, 문학의 생산자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놨다.
그녀는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주는 위로'를 이야기했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고 자신의 서사로 녹여낸 생산자인 작가의 글을 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란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보도 원칙과 효율로 따지면 결함으로 비쳤을 손석희 앵커의 과거 보도를 예시로 들었다. 나는 그녀가 지적한 두 번의 방송사고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는 세월호 침몰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릴 때 무능한 정부의 참혹한 대응과 무참히 침몰하던 세월호 보도를 할 때였고, 또 하나는 故 노회찬 의원을 비보를 전할 때 목울대까지 올라오던 슬픔을 참으며 숨을 고르던 20여 초 간의 침묵의 시간이었다.
그때 앵커와 방송을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같은 고통을 마주하는 강렬한 연대를 느꼈었다. 그때 앵커의 당황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그녀는 고통과 진실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한계이자 위로이며 개성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누군가의 고민이나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의 망설임이 있습니다. 그 주저함 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품위가 있다고 생각해요. AI의 유려하고 빠른 답변보다, 때로는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소설집을 먼저 읽고 싶었으나 나는 그녀가 생각하는 문학이 궁금해 쫓기듯 검색해 오래전 첫 산문집을 찾아냈다. 그게 독서 순서의 예의라 생각했다.
나는 바카라을 읽기 전에 바카라 제목을 붙들고 목례하는 습관이 있다. 제목 선정에 고민했을 작가와 편집인에 대한 예의랄까. '이름'은 나보다도 타인이 더 많이 사용한다. 어떨 땐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불려지지 않는 이름은 외롭다. 그녀는 외롭게 자랐을까, 방송에서 본 얼굴을 기억해 내고 나는 서툰 오해를 했다.
이 산문집은 김애란 작가가 2002년 등단 이후 17년여라는 시간 동안 삶 속에서 만난 다양한 이름들을 찾아 섬세한 활자라는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 다양한 이름들이란 스쳐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시간의 이름이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결론짓고 마무리했다. 그래서 이 바카라의 진짜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다. 그녀 다운 마무리였다.
산문집은 총 3부로 나누어 작가라는 위치에 서기까지 자신을 성장시키고 만든 가족이야기, 작가가 되어 문인의 위치에서 바라본 동료와 주변의 풍경, 문인으로써 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슬롯의 모순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담아낸 목소리들을 나누어 호명하는 내용이다. 그녀에게 '이름'은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특히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작가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성장시기를 담고 있기에 다정하게 읽힌다.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인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열등감과 우월함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보낸 삶에서 비롯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느 정도 인격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 방식, 성격이 결정된 상태에서 우리는 경험이라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주어진 환경에 내리는 결론이 어떤 시선으로 슬롯를 바라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점심때면 '맛나당'에 수많은 손님과 더불어 그들이 몰고 온 이야기가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국수는 '빠른 음식'이라 면이 퍼져도 국물이 식어도 안 됐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계층과 계급, 세대를 아우르는 인간군상과 공평한 허기를 봤다.
유년의 정서가 공기처럼 흡수되던 시절 그녀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손칼국수 집에서 자신의 삶을 자기 것으로 가꾸는 것을 배워나갔다. 부모의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하고 선택한 문학이라는 이 할로 그녀는 자바카라했지만 자식의 결정에 존중하고, 그 이 할이 힘을 내도록 길러준 팔 할에 대해 존경이란 이름을 불러줄 때 나는 참 기뻤다. 모성에 기초한 그녀의 여성성은 수평적이고 긍정적이고 진보적이다.
2부와 3부는 문인이라는 바카라임 있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만난 다양한 이름들이다. 독서하고 글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과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챕터는 글을 대하는 자세랄까. 만나고 헤어지고 무겁게 조우한 문장들과 함께 했던 많은 이름들 앞에서 세월이 덧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거니 그럴 거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선배는 그렇게 '자신이 읽은 문장이 아닌 산 문장'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누군가 오래 쓴 문장을 알아보고 그 문장의 바깥을 짐작하며, 그 둘레에 자기 이야기를 입혀 설명한다. 어떤 단어를 눈으로 본 뒤 다음 사람에게 그걸 몸짓으로 설명하는 개그맨처럼 능청을 떨며 그런다. 그러니까 이 바카라에 묶인 모든 글은 작가가 두 번 쓴 독후감이다. 한 번은 눈과 마음으로 다른 한 번은 몸과 시간으로.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기 전에 그녀의 기원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이 산문집은 그녀의 작품 입문서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