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계절감을 집어넣자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난다고 느낀다면, 기억에 새겨 둘 만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잘게 쪼개어 일정을 끼워 맞추는 데는 능숙하지만, 시간을 길게 보고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오뚝한 일정을 세우는 데는 서툴다. 마치 도로를 포장하면서 정작 그 도로 끝에 기념할 만한 멋진 건물을 짓지 않고 계속 포장 공사만 하는 것과 같다.
- 건축가의 공간일기/ 조성익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들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희망을 선물한다는 의미일 테다. 봄은 그런 의미에서 한파를 온몸으로 견디며 포기하지 않은 결의에 대한 자연의 보상의 아닐까. 그 힘겨움을 알기에 우리는 한결같이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아파트 둘레길을 돌다가 개나리와 영춘화 그리고 벚꽃과 매화, 목련까지 간지러운 햇살에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어제까지 숨바꼭질에서 한 명도 찾지 못한 술래가 오늘은 몽땅 찾아낸 아이처럼 입에 헤벌쭉 벌어진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점을 찍는 일은 큰 이벤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계절감으로도 충분하다. 존재하는 익숙한 장소를 자주 찾는 반복행동은 마음의 안정을 줌과 동시에 변화에 민감하도록 깨어있게 만든다. 매년 피는 꽃나무에도 작은 변화를 찾아내면 비밀을 알게 된 듯 흥분을 느끼게 된다. 이호선 교수는 나만의 힐링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복잡한 삶 속에서 있었던 고민들로 지쳐있던 자신을 돌아보며 회복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연은 그런 의미에서 잔소리 없는 조언을 건네준다.
오랜만에 뒷동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들뜸과 함께 굳어있던 다리 근육의 통증이 아우성을 쳤다. 매년 봄마다 만나는 꽃들 이건만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이들과의 만남은 눈에 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 봄바람이 가볍게 뺨을 건드니 마음도 깃털처럼 가볍다. 입구에 비치된 운동기구로 입산 전 스트레칭을 해준다. 뒷동산 둘레길 흙은 말라 걸음마다 먼지가 일어났다. 봄비가 듬뿍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본다. 청설모가 하늘이 마당인양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의 둘레길 코스는 늘 패턴이 같다. 어제는 요란스러운 새소리에 이끌려 다니던 길을 벗어나 개나리가 무더기로 핀 곳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남편과 나는 와르르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보일까 말까 하는 붉은 머리오목눈이 아기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날아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삶의 공간에 낯선 이의 등장에 놀란 것이다. 우리는 장난친 아이처럼 웃으며 돌아섰다.
숲 속 많은 나무들의 가지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햇볕을 충분히 받아 광합성을 치른 나무는 꽃을 피우며 으스대고 있었고 그늘에 가려 빛이 부족한 나무는 질투를 느끼며 분발하고 있었다. 어디든 연둣빛 새순들이 삐죽삐죽 나오는데 마치 힘을 쓰며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영차영차..
우리의 발걸음은 운동마당을 중심으로 빙 둘러 심어놓아 봄이면 장관을 이루는 벚나무 무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봄이면 왕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다 피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도 있었던 것 같다. 다행이었다. 늦지 않았다. 아직 그녀들에겐 햇볕이 부족한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꽃이 화려하게 피는 벚나무는 애정과 연민이 많이 가는 나무다. 봄철이면 화려한 벚꽃으로 온 거리를 축제로 만들지만 속은 상처투성이로 문들어진 나무기 때문이다. 벚나무의 수피 안에는 맛난 수액이 있어서 수많은 곤충들로 몸살을 치른다. 우리는 벚꽃에만 관심을 두지 곤충들에게 시달린 몸통은 보지 않는다. 벚꽃은 세상 화려하게 피었다가 세상 화려하게 진다. 꽃피는 시기는 불과 일주일정도뿐이다. 우리는 그녀들의 아픈 인생 속에서도 기꺼이 즐기는 화려한 축제를 기꺼이 축하해 주고 함께 해야 한다.
나는 꽃망울만 보고도 벌써부터 설렌다.
글을 올리고 며칠도 가지 않아 벚꽃들이 만개한 모습이 보인다. 그녀들의 사랑을 후기처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