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들의 행복을 지켜보며
개울가에 산목련이 잔뜩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한 가지 꺾어 다 식탁 위에 놓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에게 못할 일 같아서였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는 이 일을 얼마나 놀라운 질서인가. 그것은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꽃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가 스스로의 충만한 삶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다가 더 견딜 수 없어 마침내 밖으로 터뜨리는 것이다.
- 법정스님 / 봄 여름 가을 겨울
일주일정도 화려하게 즐길 수 있는 벚꽃 축제 기간에는 어김없이 하루이틀 봄비와 바람으로 시련을 겪는다. 간신히 견딘 가냘픈 꽃들은 돌아온 쨍한 햇볕에 기운을 받기는커녕 물기 먹은 눌림에 나뭇가지와 그만 안녕을 고한다.
떠난 인연을 그리워하던 우리는 꽃비가 내린 땅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제야 보이는 주변의 작은 풀꽃 무더기들. 꽃마리꽃, 보라제비꽃, 애기똥풀, 조팝나무꽃.. 덩치 큰 꽃나무들에게 햇볕을 양보하고 이제서 순서가 온 아이들. 이들은 자신이 약하고 쉽게 밟힐 처지에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고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꽃을 피운다. 작다고 억울하다고 늦었다고 속상해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모를 하지 않는다.
산에 오르면 숨이 가쁘고 힘이 들어가지만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는 자유를 느낀다. 감정은 몸에서 오고, 생각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생각과 똑같은 거라고 착각한다. 불안할 때 산에 오르면 감정이 가라앉고 차분해진다. 나는 나의 감정의 가벼움에 놀란다.
나는 단조로운 일상의 패턴을 유지하며 규칙적인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행복이라 이름 짓는다. 오후 7시 이전에 저녁을 마치고 편안한 수면을 위한 몸의 준비를 한다. 에픽테토스는 '부는 소유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줄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욕구를 내 안에서 찾는 방법을 찾은 이후 얻은 행복이다. 예전에는 온라인 게임과 집을 오가며 남은 밤시간을 즐기고 싶어 알코올을 찾았다. 경쟁에 지친 나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나의 욕망의 대가는 악화된 건강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잊고 산다.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밑바닥 속 능력의 최대치까지 긁어모아 과로한다.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노력이다.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본래 욕망은 부족감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욕망을 줄이면 이미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연은 꽃과 함께했던 시간, 기억들이 소중해도 시간의 흐름 속에 순응하고 놓아줄 줄 안다. 집착하지 않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라 생각하고 보내준다. 애착에 대한 스트레스까지도 받지 않는다.
공부머리와 달리 연애감정은 느리다 생각했던 큰 아들이 요즘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데이트를 한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느린 연애지만 느리다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보폭으로 차곡차곡 봄의 계절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부부는 자연 닮은 표정을 짓는다. 서투른 아기의 말을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말소리보다 말의 뜻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처럼 그들만의 사랑이 여물거라 믿는다. 서툴고 느린 사랑은 침묵의 조명을 사랑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찾아온 봄일 뿐이다.
편안한 삶, 편안한 사랑을 추구하는 그것은 느리지만 만족의 감도가 높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