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공원 봄 산바카라길에서
함께한 시간이 많아도 사소한 계기로 소원해지기도 한다.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추억을 되새기는 마법’을 추천한다. 때로는 다툴 일도 있었을 테지만 좋은 기억도 많기 때문이다. 바로 그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 하라 구니오
'제철 행복(김신지 저)'를 읽고 제철 숙제를 해야 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봄맞이 외출에 나섰다. 미세먼지도 없다는 최상의 온도와 날씨까지도 우리 등을 떠민다. 어디를 가야 할까, 망설일 때 우리는 가까운 선유도공원을 떠올린다. 영화대교 중간쯤에 위치한 봉우리섬인 선유도공원은 가벼운 마음만 챙겨 나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선유도공원으로 향하는 능선모양의 다리(선유교) 중앙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상쾌한 기분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잔잔히 흐르는 한강의 조망 때문이다. 선유도공원은 과거 정수장으로 이용되었던 섬을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자리 잡은 '물'이라는 테마로 기획된 곳이다.
의도적으로 녹슨 철재물을 치우지 않고 재활용하여 여러 수생식물의 생장과 정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태학습 놀이터로도 애용되기도 한다. 이번 산바카라길엔 봄날의 한 장면을 담으려는 카메라촬영팀 무리를 만났다. 어느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모르겠으나 청춘 남녀의 풋풋한 애정을 담는 모양이었다.
먼발치에서 화면 속 한 장면을 온전히 담기 위해 촬영팀의 눈동자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은 꽤 진지했다. 영상의 한 장면을 담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원되는지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본연의 임무를 그제야 깨달은 사람처럼 발길을 돌렸다.
느린 걸음으로 산바카라하는 선유도공원 산바카라길에 만난 나무들은 아직 새순소식은 없었지만 경칩이 다가오니 분명 자연에 답할 것이다. 곧 있으면 이 나뭇가지들의 여백이 채워지겠구나 생각하니 이른 반가움에 미소가 번진다. 봄햇살과 따스한 바람의 온기가 나뭇가지의 귀에다 속삭이듯 간지럼을 태우고 있는 것 같다. 봄은 모두가 두근거리며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두 손 잡고 남편과 걷는 느린 산바카라길에는 우리가 걸어온 삶에 대한 이야기 즉 추억을 되새기는 이야기가 늘 함께 한다. 나의 판단과 타인의 평가가 달라 타협하며 현실에 적응했던 온라인 게임이야기에서부터 불공정했던 부모의 판단에 우울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순서 없고 맥락이 섞인 고백들이 파편처럼 서로 이어지지만 순수한 내편이라는 안전한 믿음이 깔려있기에 가능하다.
내편이라는 싹은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사랑의 시작부터다. 이 사람을 믿고 내 마음을 주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이 마음이 낙엽처럼 쌓이는 어느 날의 마침표까지. 산바카라만으로도 마음 가득 채워지는 세월의 치유를 만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완전한 남남이 만나 '둘도 없는' 세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부부관계에도 인간적인 성숙의 진화가 있는 것이다.
한 바퀴로 아쉬워 우리는 ' 한번 더'를 외치며 같은 길을 돌았다. 봄산바카라은 한 번으론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촬영팀은 사라져 버려 끝났구나 하며 다리를 오르려는데 선유교에서 두 번째 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옷을 착용한 것을 보니 같은 장소에서 다른 컷을 촬영하는 모양이었다.
두 남녀가 마주 보고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에게 호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쥐어주고 있었다. 남편은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나는 조금만 더 보고 싶어 힘을 주어 따라가지 않았다. 뭔가 마지막 장면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박력 있게 여자배우를 끌어안자 "커트!"하고 감독이 외친다.
캬약!
남편은 싱겁게 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이끈다. 아, 봄은 사랑의 계절이구나. 나는 이제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처럼 웃으며 들뜬 마음을 잡고 총총 따라간다. 저 영상 속 커플은 결혼해 행복한 봄날처럼 사는 결말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누구나 비슷한 봄풍경과 닮아있다. 이렇게 들뜬 마음을 안고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