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밤 #2

구천을 떠도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한(恨)가(with 무당의 답가)

byBill

피 묻은 젖줄[현덕왕후 시점의 한(恨)가]


무덤 속 어둠조차 차마 나를 가두지 못해 썩지 못한 눈으로 구만리 영월 길을 굽어봅니다.


내 배 아파 낳은 아이, 젖 한 번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차가운 서강 물줄기에 그 어린 넋을 던졌습니까.


점쟁이야, 내 눈을 보아라. 내 옷자락에 맺힌 건 이슬이 아니다. 천 리 밖 구중궁궐, 그 찬탈자의 꿈속에 침을 뱉으러 가는 길 내 아들 눈에 맺힌 핏방울이 내 가슴을 찢는 손톱이 되어 밤마다 그놈의 살갗을 후벼 파고 뼈마디를 갉아먹는다.


"어머니, 춥사옵니다" 그 가느다란 환청 한 마디에 내 혼자 따뜻한 흙 아래 누워 있을 수 있겠느냐. 원통하고 원통하여 이승의 문턱을 넘나드니 내 원한이 비가 되어 내리면 영월의 강물은 붉게 타오르리라.


아이를 안아줄 팔조차 남지 않은 헐벗은 이 어미는 오늘도 네 귓가에 피 맺힌 울음을 쏟아내니 너는 내 서러운 곡소리를 한 자 한 자 뼈에 새겨 써 내려가라.



붉은 실을 끊고 가소서[무당의 진혼곡(鎭魂曲)]


맺힌 한은 가시 덩굴 되어 온몸을 얽어매고 마르지 않는 눈물은 이미 강이 되어 길을 막았으니 산 자의 땅에 발붙이지 못한 가련한 넋이여 이제 그만 무거운 원망의 옷을 벗어 던지소서.


아드님은 이제 영월의 솔숲 바람이 되었고 그 고운 목소리는 청령포의 물결에 씻겨갔으니 어머님 또한 저승의 문턱에서 뒤돌아보지 마시고 피 묻은 젖줄 대신 하얀 구름 한 자락 붙들고 가소서.


복수는 산 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피부병 돋은 찬탈자의 고통은 그의 업보로 두소서 당신의 손톱 끝에 맺힌 그 시퍼런 살기(殺氣)로는 결코 아이의 차가운 손을 따스하게 잡을 수 없습니다.


내가 쏟아낸 이 향 연기 타고 아득히 먼 곳으로 꽃잎 지듯, 저녁노을 지듯 그렇게 고이 가소서 다음 생에는 부디 왕가(王家)의 이름 없는 필부필부로 만나 따뜻한 밥 한 그릇 마주 앉아 실컷 웃어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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