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등장과 시장 잠식
사실 IT 업계에서 진정한 위기의 시작은 지금부터이다. ChatGPT를 필두로 하는 생성형 AI의 등장과 빠른 확산이 프로그래머와 여러 전문직의 노동 가치를 급격히 떨어트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AI의 신뢰성을 의심하던 수많은 현직자가 강화 학습 모델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미친 듯이 발전하는 AI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코드를 만들고 프로그램의 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AI가 하고 있다. 인간은 그저 AI가 만든 결과물을 복붙하며 기능의 정상 여부만 확인할 뿐이다. 컴퓨터 기술에서 시작된 생성형 AI는 역설적으로 컴퓨터 기술자의 역할을 가장 빨리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환경이 시시각각 바뀌는 와중에도 전산 인력시장은 기존 방식의 늪에 빠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앞으로 위기가 온다는 걸 직감으로 알면서도 매출 감소만을 걱정할 뿐 근본적인 원인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솔루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하기 시작했고, 프리랜서 및 용역 개발자 파견에만 목매던 회사도 계약할 발주처가 사라져 손가락만 빨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대기업이나 행정 및 각종 기관은 사실 프로그램이 어떻든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매출이나 경영, 관리 등과 관련된 각종 데이터가 잘 쌓이고, 이를 토대로, 자동으로 집계되어 우상향하는 차트만 보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관리한다는 건 비용과 수고일 뿐 굳이 바카라임질 이유가 없는 일이다. AI 에이전트가 더 발달해서 기존의 업무 프로그램 화면을 뚝딱 만들어내고 데이터베이스도 자동으로 관리까지 가능하다면, 그때부터 인간 개발자에게 비싸게 용역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일반 기업을 위한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의 수요가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네카라쿠배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인간 개발자 한 명이 관리하는 서비스가 늘어나도, AI만 잘 활용하면 작업량 자체는 예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반면 용역에 의존하던 절대다수의 IT 기업과 대다수의 개발자는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휩쓸려 한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