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면? 안돼요.

쫄았네..

by민영


쫄면은 이름부터 그 맛까지 신기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면발의 색을 보자 하면, 인공색소임이 다분한 단무지빛 노란색을 띠는데, 멀리서 봐도, 누가 봐도 너무나 쫄면 그 자체다.

언뜻 보면 그 노란색이 '쫄면의 탱탱함의 비밀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선명한 컬러감을 과시한 채, 오목한 그릇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고명으로 올려놓은 야채는 또 어떤가?

마치 다이어트 음식이라도 되는냥, 잘게 채 썬 오이와 당근이 올려있고, 멋을 아는 가게 주인이라면 자색 양배추와 콩나물까지 더해주니, 먹는 사람의 죄바카라감까지 덜게 해 주는 요상한 녀석이다.


거기에 톡톡 뿌려진 깨며, 매콤 달콤한 빨간 양념까지 올려 버무려 버리면, 나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인정받을만한 비주얼을 완성하게 된다.


한국 사람 중에 그런 인기쟁이 녀석을 천대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짐작했겠지만, 그 몇 안 되는 소수의 입맛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다.


도당최 왜 안 먹는지 설명하자면, 탱탱한 면발부터가 문제다.

이가 약해 음식물을 대충 씹어 삼키는 나는, 굵고 질긴 쫄면을 소화시키는데 어려움이 많다.

더군다나 싫어하는 채소인 당근과 양배추가 나란히 올려져 있으니, 쫄면의 맛이라도 볼라치면 채소들을 걷어내야 해서 번거롭고, 입술과 콧구멍이 절로 수평으로 펼쳐지는 고추장 양념장이 진을 치고 있어 퇴로를 찾기에 바쁘다.

눈 속임용으로 잘 익은 완숙 계란을 반 갈라 뉘어놨다고 해서, 이 녀석에 대한 경계심이 풀릴리는 만무하다.





'쫄면'이라는 이름 앞에 변치않는 내 굳은 심지는, 이 녀석을 처음 본 1999년부터 한결같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과 중심상가에 있는 분식점에 들렀었다.

흔하게 먹는 분식 메뉴를 시킬 줄 알았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쫄면'이라는 생경한 음식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시골도 아니고 1기 신도시 지역에 살았었으니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살았을 법 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여름날이 쫄면과의 첫 대면이었다.


맛있어, 먹어봐.



거듭 권하는 친구의 말에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자고로 면발이라 하면, 후후 불어 한 김 시켜 먹어야 하는 법.

젓가락을 집어 들고 두어 번 호흡을 불어낸 후, 입안으로 쏘옥 넣었더랬다.



왁!? 이거 왜 차가워?


냉면이나 냉모밀 말고도 차가운 면 음식이 있는 줄 몰랐다.

극강의 수족냉증러였기에 찬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던 내가, 피해야 하는 차가운 면 요리가 또 있을 줄이야?!

너무 차가워, 쫄면.


쫄면 면발 한 가닥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고무줄 같던 그 면발을 대충 씹다 꿀꺽 삼켜버렸다.


맛있네... 너 다 먹어.


그날의 그 한 가닥이 내 평생 이어지는 쫄면에 대한 정의로 굳어졌다.

차갑고, 달짝지근하면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데다가, 싫어하는 채소들이 아삭거리는 음식.


이후로도 몇 번, 쫄면을 먹으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정말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당황스러운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아 남들이 시키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해외에 살다 보니 간혹 중식 면요리의 대체품으로 쫄면 면발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면만 쫄면을 사용하고, 양념이나 육수는 원래의 것들인 경우가 많았는데, 주로 희생양이 된 것이 짬뽕과 짜장면이었다.


아무리 양념이 맛나고 육수 맛이 대단한 것이라 해도 일단 면발이 쫄면으로 대체되는 순간, 카테고리 불분명의 말도 안 되는 음식이 되고 만다.


짜장면과 짬뽕의 면발이 바꼈거나 말거나,

후루룩 후루룩.

잘 먹는 사람들이 경이롭게까지 보인다.


'님아, 그건 짜장면이 아니야...'



그랬다.

양념이 문제가 아니었다.

쫄면이라는 음식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고추장 양념 탓이 아니라 면발 그 자체였다.

그 두꺼운 면발에서 풍겨 나오는 질김의 아우라가 나의 입맛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리라.


싫어하는 음식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안에서, 일부 음식은 간혹 재고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쫄면이라는 녀석은 콩자반과 동급으로 최상위 탑티어에 위치해서, 일말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다.


아웃이다.


고추장 양념이던, 짭조름한 국물을 끼얹고있건..

쫄면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내가 쫄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쫄았어 #쫄면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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