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말고 다른 거 먹을게요.

밥을 주세요.

by민영



황갈색 햄버거 빵 위로 콕콕 박힌 참깨를 내려다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언제쯤 손과 테이블을 더럽히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든 햄버거를 쥐고, 턱관절 운동 각도를 짐작해 본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햄버거라면, 배달을 오면서 눌리고 찌그러져 먹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두께감이 있는 수제버거라면, 가볍게 쥐었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넓혀 손가락 근육에 힘을 주어야 하고, 아래턱도 좌우로 움직이며 턱 운동 범위를 늘려야 하니 조금 더 번잡스럽다.


그렇지만 종국에는 의미 없는 워밍업임을 안다.


입이 지나간 자리마다 케첩에 버무려져 축 늘어진 양상추와 피클이 삐죽삐죽 기어 나오게 될 것이니까..

용케 한 입으로 끊어냈나 싶은 찰나, 잘리다가 만 토마토가 테이블 위로 뚝 떨어지며 진홍색 케첩이 옷에 튀는 결말로 끝이 난다.

더티쇼의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아.. 치킨 너겟이나 먹을걸..


중얼대며 너저분해진 테이블과 손가락을 닦아내 봐도 이미 벌어진 일.

중학교 때부터 종종 먹었던 이 햄버거라는 녀석은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올바른 구강 투입 방법이 쉽게 익혀지지를 않는다.


입이 작아서 그런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먹을 수 있을까?

아니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해야 덜 추잡하게 먹을 수 있을까?

햄버거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최대의 난제다.



어쩌다 대면대면한 사이의 인간과 마주 앉아 햄버거를 먹기라도 해야 하는 날에는, 밝은 형광등 아래 음악 없이 탬버린 춤을 추는 것 같은 뻘쭘함이 몰려온다.



쳐다보지 말아 줘..


오물대며 씹어 삼키는 동작 끝에, 입술에 힘을 주어 빨대에 압을 가하는 그 모든 과정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 직관해야 한다.

차라리 국밥이나 스테이크처럼 고개를 박고 먹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정자세로 꼿꼿하게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햄버거


가까운 지인 사이라고 해도, 햄버거를 먹을 때 만큼은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잦다.


오물오물.

쪼로록.


씹는 소리와 빨대 당기는 소리가 주로 들리는 테이블과는 다르게, 이미 내 머릿속은 '흘리면 안 된다는 걱정과, 입을 얼마나 벌려야 한 번에 베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한 탓에 대화가 뚝뚝 끊기는 것이다.


무언가를 먹을 때, 입과 머리가 동시에 바쁘면, 속이 부대낀다.





먹는 과정의 번잡스러움을 제외하고 내가 햄버거를 꺼려하는 데는 예민한 촉각도 한몫을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입 속에 들인 음식물의 촉감에 따라 삼켜내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물컹한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제대로 삼키질 못하니, '식사 시간 = 등짝 스매싱 타임'이었다.

물컹한 식감이란 오돌뼈, 물렁뼈, 도가니, 닭발, 에그타르타르 같은 음식들인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는 삼겹살의 비계와 물렁뼈가 주적이었다.

지금까지도 물렁뼈는 극복하지 못했다.



'햄버거는 물렁하지 않은데, 왜?'라고 묻는다면, 사실 나도 그런줄 알았다고 대답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 먹은 햄버거의 대부분에서 분쇄가 덜 된 물렁뼈가 씹혔다.

별 의심 없이 입에 넣은 햄버거에서 으드득 물렁뼈 씹히는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그대로 입맛이 싹 가셨다.


예기치 못한 식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생기니, 햄버거를 마주 할 때마다 아시아 음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빙의가 된다.


'비빔밥'이라는 음식이 외국인들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가, 생경한 음식을 이루고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이 되기 때문이라는데, 음식에 겁이 많은 나로서는 십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세상에 비벼서 맛없는 음식이 어디 있겠냐만은, 무엇을 비비는지는 알고 먹어야 불안감을 가라앉힐 수 있지 않겠는가?


엽기적인 음식을 먹어대던 'Fear factor'의 출연자라도 된 듯, 낯선 음식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나에게는 그 속을 한눈에 알 수 없는 '햄버거'가 영원히 낯선 음식이다.






수년 전 한국에서는 수제 버거집이 큰 유행을 했었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의 대형 프랜차이즈 버거집 앞에 수많은 인파가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었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국밥 두 그릇 값을 내고 햄버거 set 하나를 사 먹는지 궁금했었다.

유명한 버거를 먹게 되면 '사랑해요, 햄버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줄 알았다.


줄을 서서 사 먹어본 각양각색의 버거들을 여럿 경험하고 난 후, 내 나름의 결론을 냈다.



햄버거는 먹지 않는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햄버거 브랜드나 맛 문제가 아니었다.

브랜드를 막론하고 어금니 사이에서 으그덕 거리는 햄버거 패티 속 물렁뼈는, 한 여름에도 부르르 몸을 떨리게 만들었으니, 안 먹는 것이 최선이다 싶다.


해외에 살면서 햄버거를 먹지 않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잘 알지만, 어쩌겠는가?

소름 끼치는 식감에 놀라서 좋아하는 쌀밥까지 멀리하는 하루를 만들고 싶지 않다.

오늘 지나간 끼니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한식이나 잘 챙겨 먹으며 살아야지..

좋아하는 것만 먹기에도 남은 날이 빠듯하다.

이미 40년 넘는 세월을 편식쟁이로 살아왔는데, 성장기도 지난 마당에 골고루 먹어 무엇하겠는가?


그래! 꾸준히 편식을 해야겠다.




#편식만세 #햄버거싫어요 #밥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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