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꽃
이성두 시인의 시집 [별꽃은 피고 지고]를 읽으면서
시인: 전진식
2부 달맞이꽃입니다
여기서는 아내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보고 있습니다
시인의 피리소리에 젖어 가을밤의 소쩍새 소리로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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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판독
이성두
모두 조용하다
대기실 앞 화면에는
재판이 흐르고
벽을 울리는 웅음은
아내의 살을 뒤진다
하나는 지나간 시간을 들추고
하나는 살 속을 파고든다
거기는 삶을 들여다보고
여기는 살을 들여다본다
거기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여기는 어떤 병명을 말할까
꿀꺽, 목이 먼저 운다
잠든 호수에 떨어지는
한 방울
남은 것은
기도뿐
<나의 시선>
— 판결과 판독
이 시는 법정의 판결과 병원의 판독이라는 두 장면을 교차시키면서, 인간의 삶과 육체가 심판받는 순간의 불안과 절박함을 그린 작품입니다.
시의 제목부터 의미가 깊습니다.
'판결'은 법이 인간의 삶을 판단하는 일이고, '판독'은 의학이 인간의 몸을 읽어 내는 일입니다.
하나는 삶의 잘잘못을 따지고, 다른 하나는 몸속의 이상을 찾아냅니다.
나는 여기서 이 시인의 삶과 아내의 병환을 그려봅니다
그의 지난날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8년동안 침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후로 그 또
또한 그의 삶도 아내의 삶이되어 아내 옆에 붙어 8년입니다
나는 여기서 8년전까지의 시인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점까지 그의 삶의 판결문은 어떤 형량이 주어질까?
아내의 병상과 접목시키는 판결과 판독을 생각해 봅니다
이제 詩 속에 잠겨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시에서 특히 두 군데가 눈에 들어옵니다.
[벽을 울리는 웅음은
아내의 살을 뒤진다
하나는 지나간 시간을 들추고
하나는 살 속을 파고 든다]
여기서 '벽을 울리는 웅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조금 궁금합니다.
내게는 통곡하는 시인의 울음 소리로 들리는데 여기서 법정 판결과 병원의 판독 이미지가 겹쳐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들추고'는 과거의 행적을 조사하는 법정의 모습이 보이고
지난날의 그의 그릇된 삶이 지금의 아내의 병상과 연관을 시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난날 자신의 삶에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를 답답해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은 이 파결문을 가슴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다시 시를 살펴 보겠습니다
[거기는 삶을 들여다보고
여기는 살을 들여다본다
거기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여기는 어떤 병명을 말할까]
이 부분은 이 시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삶과 살의 대비 '삶'과 '살'은 글자 ㅁ 하나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한 글자 사이에는 인간의 존재 전체가 놓여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살아온 지난 삶을 들여다보고 판결을 기다리고, 아내는 자신의 몸인 살을 들여다보면서 시인의 마음의 봅니다.
더욱이 '판결'과 판독에서 아내의 병환은 서로 다른 결과이면서도, 시인은 그의 지난날 행적과 연관을 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내의 병을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꿀꺽, 목이 먼저 운다']
그런데 여기서는 갑자기 울음을 하는 시인 한 사람의 몸으로 시선이 좁혀집니다.
시인은 무슨 말을 하는 것 일까요?
꿀꺽, 침을 넘기는 참고 있다가 터지는 울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이 먼저 운다'는 표현은 소리 내어 울기 전부터 몸이 이미 먼저 울고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잠든 호수에 떨어지는
한 방울]
이 부분에서는 시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잠든 부인 앞에서 시인은 참회의 눈물의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의 흔적들이 주마등이 되어 스쳐갑니다.
현실적이고 긴장된 장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파문은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에 번지는 것은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입니다 이 불씨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마지막 행으로 이어집니다
[남은 것은
기도뿐]
이 결말은 앞의 모든 장면을 한 곳으로 모읍니다.
시인은 자신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아내의 병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저도 함께 기도해 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이룰 수 있는 기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 입니다.
저는 이 시에서 무엇보다 '삶'과 '살'이라는 두 단어를 발견한 시인의 눈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삶'에서 '살'로 한 글자만 바꾸어 의미를 확장한 것은 시적 언어를 잘 활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시는 심판과 판독의 두 공간을 통해 불안과 무력감,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기도는 시인의 생활입니다
다시 한번 시인의 젖은 눈빛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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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수평선
이성두
누구에게는 기도가 되고
누구에게는 잊힌 노래가 되는
봄비
그 시간 위로
벚꽃잎 하염없이 떨어진다
젖은 꽃잎 위를
그대와 걷고 싶다
사경증이라는 이름에 붙잡힌 그대
비틀린 것은 몸뿐일까
세상은 이미 그대처럼 기울어져
나 또한 비스듬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딜까
산벚꽃 피었다 화르르 스러지고
그대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채로
비도 한쪽으로 내린다
<나의 시선>
[기울어진 수평선 p50]
이 시는 아픔을 겪는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의 고통을 세상의 불균형으로 보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사랑하는 아내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인은 끝까지 아내와 함께 기울어진 세상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기울어짐'입니다.
몸이 기울어지니, 세상도 기울어지고,
마침내 화자인 '자신'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는 것인데 시인은 그 기울어짐을 바로잡겠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는 '그대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채로' 살아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시인의 중심은 늘 아내와 함께 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보입니다
나는 오늘 고개를 숙이고 시인 앞에 사과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고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구에게는 기도가 되고
누구에게는 잊힌 노래가 되는
봄비
그 시간 위로
벛꽃잎 하염없이 떨어진다]
유독 봄비 뿐이 아닙니다 나는 이 詩를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깨우침이 되는 반성문을 써고 있습니다.
이 詩로하여 나를 바라보는 시인의 심중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기도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시인에게는 철창 속의 봄날이 되고 봄비가 되어 시인은 내리는 빗방울을 손바닥으로만 만지고 만 있습니다
"그 시간 위로 벚꽃잎 하염없이 떨어진다"라고 하면서 시인은 속울음을 하고 있을것인데 시인 앞에서 나는 나의 봄날을 노래하는 철부지였습니다
[젖은 꽃잎 위를
그대와 걷고 싶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시인의 마음을 느낍니다.
벚꽃은 피어나는 순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함께하지 못하는 아픔이 되어 꽃잎은 계속 떨어지고 꽂잎이 떨어진 길이라도 시인은 아내와 함께 걷고 싶다고 합니다.
'그대가 건강해지기를 바란다'거나 '그대의 아픔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직접 말하지 않고 그저 함께 걷고 싶다고 합니다.
이 소박한 소망이 오히려 내겐 더 깊은 울림이 됩니다
4연에서는 시인의 아픈 고백을 듣습니다
[사경증이라는 이름에 붙잡힌 그대
비틀린 것은 몸뿐일까
세상은 이미 그대처럼 기울어져
나 또한 비스듬히]
'사경증'이라는 구체적인 병명이 등장하면서 시는 현실의 고통과 맞닿습니다.
여기서는 그 풍경 안에 놓인 아내의 육체적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틀린 것은 몸뿐일까"
이 말은 육체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몸이 비틀린 아내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오히려 세상이 제대로 서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세상은 이미 그대처럼 기울어져
나 또한 비스듬히"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이미 불공평하고 불완전하다는 인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인 역시 그 고통으로 인해 때로는 흔들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아내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아내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인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차 한 잔을 마시다가도 아내의 호출에 헐떡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시인의 얼굴빛이 괜시리 나를보며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딜까
산벚꽃 피었다 화르르 스러지고]
이 구절에는 단순히 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를 묻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 얼마나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이 행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산벚꽃이 등장하는데
'피었다 화르르 스러지고' 라는 표현은 순간 잘못될수 있는 아내의 생명을 걱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채로
비도 한쪽으로 내린다]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아내의 몸을 바로 세우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울어짐을 모두 바로잡겠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내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채로 있겠다고 합니다.
끝까지 아내와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마지막 행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비도 한 쪽으로 내린다'
앞에서는 비틀린 몸과 기울어진 세상을 이야기했는데, 마지막에는 비마저 한쪽으로 비틀어져 내립니다.
[기울어진 수평선]은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통에 시인의 몸과 마음까지 기울이는 사랑을 그린 시입니다.
아내가 기울어진 상태에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시인의 깊은 사랑에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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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이성두
그 시간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기도다
날마다의 영원이 쌓이는
거기 머무는 것도
기도다
아침이면
잡초처럼 돋아나고
자르고 돌아서면
손끝에 다시 자라나
끊어야 하는데
끊지 못하는
술처럼 담배처럼
사랑처럼
놓쳤던 그 시간
다시
손끝을 모은다
<나의 시선>
[접속p48]
이 시는 제목부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접속'이라고 하면 컴퓨터나 인터넷에 연결하는 일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접속은 단순한 연결이 아닙니다.
나는 시인이 말하는 접속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봅니다. 언제부턴가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하게 애걸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소리는 매일을 하늘로 상달되고 아내의 병은 완치되리라 믿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두손을 모우고 정성을 드리는 것인데 시인의 기도는 아내와 함께하는 생활도 기도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 됩니다 아내의 고통을 끊어야 하는데 끊지 못하는 그의 기도는 숙명처럼 전신을 휘감고 옴짝달싹도 못한체 기도에 매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이 여인을 하루빨리 병상에서 벗어나 침대를 박차고서 나와 함께 봄나들이를 할 수있게 해주십시요."
주방에서 달거닥거리며 식기를 세척하고 있는 시인의 눈빛은 늘 아내 옆에 있습니다.
기도는 그의 일상이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기도와 아내는 이콜이 된다
시를 살펴보자
기도로 시작하는 시
[그 시간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기도다]
첫 구절부터 의미가 심장합니다
'그 시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요?
기도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어느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어떤 시간이든 집으로 돌이오면 '들어와 있다'는 것 자체가 생활이고 생활은 곧 기도가 됩니다
기도를 반드시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는 행위로 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다음 구절로 이어집니다.
[날마다의 영원이 쌓이는
거기 머무는 것도
기도다]
'날마다의 영원'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은 닫힌 그의 생활이 됩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하루하루가 시인의 삶이 됩니다. 시인은 그 시간 속에 머무는 일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아침이면
잡초처럼 돋아나고
자르고 돌아서면
손끝에 다시 자라나]
저는 이 부분이 이 시에서 가장 생생하다고 생각합니다.
잡초는 뽑아도 다시 자랍니다.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돋아납니다.
시인은 어떤 대상을 직접 밝히지 않은 채 잡초에 빗댑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생활을 이야기하겠지요 그 생활이 잡초가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한 번의 결심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자르고 돌아서면'이라는 표현.
분명히 잘라냈다고 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서니 다시 자라납니다.
특히 '손끝에 다시 자라나'는 표현이 독특합니다. 잡초가 실제로 손끝에서 자란다는 뜻이라기보다, 잘라 낸 기도의 대상이 여전히 시인의 몸과 감각으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끊어야 하는데
끊지 못하는
술처럼 담배처럼
사랑처럼]
이 대목은 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좁혀 줍니다.
앞에서는 잡초라는 비유를 통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데
여기서 시인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술과 담배, 사랑을 연결합니다.
술과 담배는 끊겠다고 결심하면서도 쉽게 끊지 못하는 대상입니다. 사랑 역시 이별을 결심했다고 마음에서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의 의지만으로 쉽게 끊어버리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인은 아내와의 삶은 이보다도 더한 중독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놓쳤던 그 시간
다시
손끝을 모은다]
저는 이 결말을 중요하게 봅니다.
'놓쳤던 시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지난 과거? 아닙니다. 아내를 위한 부족한 정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의 '손끝'은 잘라 낸 잡초가 다시 자라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그 손끝을 모읍니다. 두손을 모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앞에서는 끊어 내려는 행위와 그 실패를 보여 주었다면, 마지막에서는 무언가를 다시 붙잡으려는 행위가 나타납니다.
특히 '다시'라는 한 단어를 생각해보면 놓쳤던 시간을 다시 돌아보고, 다시 마음을 모으려 합니다.
여기서 '손끝을 모은다'는 표현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흩어진 마음도 모으는 행동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첫 연의 '기도다'와 마지막 연의 '손끝을 모은다'가 서로 원을 그리듯 마무리 됩니다.
시인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삶
눈물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를 이야기해 보렵니다
접속!
시인의 현재 생활에 아픔을 탈출하려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기도에 답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다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