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부친 편지

by빈칸센

아무튼 파리에 갑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둔 도시. 주변인들의 후기만 듣던 날을 지나 직접 가보려고요. 몽마르트르 언덕과 에펠탑, 센강까지 전부 느껴볼 거예요. 기간은 넉넉히 2주 잡았어요. 파리에만 2주 있다고 하니, 다들 말리더라고요. 3-4일이면 충분히 볼 수 있데요. 저는 여행 보다 현지인처럼 걷고 싶어요. ‘가봐야 해’ 보단 ‘오늘은 여기 가볼까?’에 가까운, 지하철 보단 뚜벅이로 살아 보려 해요. 상상 만해도 설레고 살이 떨리네요. 가서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실망과 상처만 안고 오면 어쩌지 싶습니다만, 뭐든 가봐야 아는 거니까. 판단은 미뤄 둘게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언제부터 그곳을 사랑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 좋았는지는 확실히 기억해요. 8-10세 즈음이었을 거예요. 내가 사는 나라와 세계를 인지한 때에 ‘프랑스’란 이름이 좋았습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어요. 별거 아닌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사랑이잖아요. 영국, 미국, 일본과 달리 독특한 발음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까지.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언제나 프랑스 파리였고, 서툰 글씨로 적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상대를 잘 몰라도 덜컥 좋아한다 말해버리는 것처럼. 짝사랑을 인지한 순간, 마음은 저 끝까지 달려갑니다. 언제, 누가 물어보든 늘 같은 대답입니다. 당시엔 에펠탑 밖에 몰랐는데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다른 건 중요치 않았어요.


20대가 됩니다. 자유롭게 어디든 갈 자격을 얻었죠. 마음과 자금만 있다면 갈 수 있는데, 겁이 났습니다. 파리의 뒷면을 하나씩 알게 됩니다. 소매치기와 인종차별은 흔한 일이고, 악취가 진동한다면서요. 파리 신드롬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프랑스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크게 느끼는 현상입니다. 오죽하면 용어까지 나올까 싶었어요. 악취는 그렇다 쳐도 소매치기는 난감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돈은 뜯겨 봤지만, 소매치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저희 집엔 자전거도 없던 터라, 털리는 경험은 전무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인 파리, 지천에 깔린 게 도둑이라고 하니 신경 쓰입니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마땅히 도움 구할 이도 없을 거고요. 이미 털린 건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비싼 돈 주고 가는데 -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긴 싫었어요. 아름다운 것만 담아도 부족하잖아요. 혼자 가는 건 포기하고, 교내 해외 탐방으로 눈을 돌립니다만. 시원하게 1차 탈락 이후엔 전 세계적인 역병으로 해외여행은 물 건너갔습니다.


이때부터 ‘유럽 = 신혼 여행지’로 시선을 돌립니다. 회피한 거죠. 혼자 가기엔 무섭고, 누군가 함께 하면 조금 더 든든할 테니까요. 문제는 결혼이 가능하냐입니다. 쉬운 일이었다면 - 아무나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만나는 이도 없고 - 풋풋한 설렘은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이런 저를 가엽게 여기어 운명의 짝꿍을 주실 수도 있겠지만. 1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이왕이면 걸어 다니고 싶은데.. 너무 늦어 버리면 원하는 파리 여행이 아닐 거예요. 사주팔자, 타로도 비껴가는 연애운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 신혼여행은 아주 허황된 것임을 깨닫습니다. 안 되는 도박 판에 뛰어들 이유는 없죠. 그리하여 혼자서 갈 겁니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2026년이 아니면 안 돼요. 1-2년 내에 여윳돈과 배우자를 구한다 쳐도 시간이 없다면 꽝입니다. 앞으로 평생 일해야 할 텐데, 2주 동안 잘 다녀 오라며 응원해 줄 회사가 몇이나 될까요. 떠날 수 있는 건 지금입니다. 올해를 넘기면 - 살아온 대로 살게 될 거예요. 이런저런 핑계로 덮어 둘 거고. 여행 가더라도 늘 후회할 겁니다. 더 일찍 올걸 하면서요. 혹시 모르죠. 주저했던 나를 미워하며 죽을 수도요.


글을 쓰는 지금도 무섭습니다. 시작은 설렘이었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큽니다. 아늑하고 익숙한 한국에서만 생활하다 모든 게 낯선 곳으로. 혼자서 나를 바카라임지고 직면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꿈의 도시에서 인생 과업이 되어 버렸거든요.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합니다. 가서 얼마나 우왕좌왕 당황할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걱정은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멈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렘과 두근 거림으로 바꿔 보려고요. 안 좋은 경험도 하겠죠. 길을 잃고, 칭챙총 소리에 어찌할지 몰라 못 들은 척 지나치기도 할 겁니다. 서러움에 한바탕 울고 - 당장 돌아가고 싶어 할 수도 있어요. 그만큼 좋은 이야기들이 쌓일 거예요. 32년 동안 몰랐던 저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운명의 짝꿍이 파리에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뭐든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법이니까. 더는 걱정 안 하려 합니다. 아무튼 갈 거예요 그곳에. 많은 걸 느끼고 오기를 바라며 미리 인사합니다.


안녕 파리, 9월에 만나자.


https://youtu.be/KVBWSO9Y9Co?si=YjTxMDviHkarqf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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