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죽음 그리고 영수증

by빈칸센

문득 궁금했다. 소나기가 내리는 목요일 오후 5시. 라테 마시다 갑자기 죽어 버린다면? 운명이 다해 심장이 멈춰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 생채 시계는 멈췄으니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 드라마를 보면, 주변 소음이 점점 먹먹해지면서 정신을 잃던데..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다. 스위치를 탁 누른 것처럼 기억을 잃지 않을까 싶다. 마치 형광등 꺼지듯. 온몸에 힘이 풀려 시체처럼 스륵 쓰러질 것이다. 옆자리의 남성 분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괜찮냐며 묻겠지. 내 뺨을 때리기도 할 텐데, 순한 외모 셔서 세게 치진 못하실 것 같다. 더 용기가 있다면, CPR도 시도하실 테다. 셔츠 단추를 확 제치면 내 속살이 보일 텐데 그건 좀 부끄럽다. 노출이 싫어 수영장도 가지 않는 나에게 가혹한 일인지라 죽음의 순간에도 체면은 지켜졌음 하지만. 과한 요청임을 잘 알고 있다. 119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 상체가 드러난 채로 있어야 하겠지. 죽어 가는 와중에도 나만을 생각한다. 상상 속인데도 괜히 죄송스럽다. 30분 전부터 옆자리에 앉아 홀로 독서 중이시다. 여유을 즐기려 했는데, 생전부지의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우실까. 휴가를 쓰신 거라면- 더 송구스러울 테다. 하지만 나에겐 사과할 생명력이 없다. 단지 기도하는 수뿐이다. 부디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남은 삶을 잘 살아내기를. 다음부턴 슬롯에 의해 차근차근 처리될 것이다. 의사의 사망 선고와 장례식, 사망 신고까지 이뤄지면, 이승 라이프는 공식적으로 끝이 난다. 죽음은 그 어떤 일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된다. 현대슬롯의 원리대로.


"카페 라테 1 7,500원"


감열지에 새겨진 잉크 몇 자, 모든 상상은 영수증으로부터 시작한다. 커피치곤 비싼 가격이다. 체감상 카페 라테는 5-6,000원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1,500원 웃돈을 더 줬다. 나에겐 큰 소비이지만, 생애 마지막 음료라면? 타인들은 카페라테를 어떻게 생각하려나. '이 녀석 가기 전, 사치스러운 한 잔을 마셨구먼'일까?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디저트라도 하나 먹지 그랬어'라며 안타까워할까? 100중 99는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내 지갑사정이 녹록지 못하더라도 - 비싸고 거창한 걸 먹어야 했었다고. 돈이라도 빌려줄 것 그랬다며 한탄하는 분들도 분명 계실 테지. 이승에서의 마지막은 결코 가벼울 수 없나 보다. 나를 아꼈던 가족,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죽음의 당사자인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삶의 낙이 라테 한 잔인 사람으로서 최고의 마무리가 아닌가. 마지막일 줄은 몰랐더라도 - 가는 길만큼은 부드러운 한 모금을 음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새로 산 신발이 미련으로 남는다. 2번이나 사이즈 변경했으나, 제대로 신어보지 못한 운동화. 그걸 두고 돌아가려니 두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저승 가는 길에 신고갈 수 있도록 같이 태워 주기를 바라본다. 고작 신발 때문에 구천을 떠돌고 싶지는 않으니.


사소한 후회들은 의식과 함께 사그라들지만, 남은 이들에겐 현재의 사건이 된다. 죽음의 소식은 점점 퍼질 것이다. 가족들을 통해 친척, 친구들에게 우선 전달될 테다. 내 SNS에도 부고 소식이 올라오겠지. (대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이만큼 효율적인 방법을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지노톡 모두 괜찮다만. 틱톡에서만큼은 싫다. 32세 입장에선 가벼운 느낌이라. 내 죽음이 챌린지처럼 보일까 두렵다. (다행히 틱톡 계정은 없다.) 죽은 지 24시간도 안 되어 퍼져 버리고, '그 소식 들었냐며' 갈지 말지 고민하기도 할 테다. 10여 년 전, 함께 재수했던 영아, 유정이, 재영이는 과연 오려나? 연락 없는지가 한참인데. 군대, 대학생, 온라인 게임 동료 등 한때 어울렸던 사람들 모두 왔으면 좋겠다. 직접 만나진 못하더라도 - 인사는 할 수 있는 거니까. 함께했던 찰나를 나를 통해 기억해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울기도 웃기도 하고,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한다면. 그걸로도 괜찮은 엔딩이다. 가족들에겐 최악의 사건이겠지만.. 젊은 날 져버린 목숨,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나를 잊는다고 해도 말이다. 나 또한 타인의 죽음 앞에서 그러했기에.


쿨한 척 적었지만, 스스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죽을 나이를 정해두지도 않았고 - 아직 내 안엔 꿈이 존재한다. 내 목소리로 공연도 하고, 바카라과 사진전 활동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여행도 가봐야 한다. 결혼도 해야 하는데 - 배우자를 어린 나이에 사별시킬 순 없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 저승사자께서 언제 데려갈지 모르기에. 내 생의 마지막이 라테 한 잔일지라도 짠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좋아하는 걸 누려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오래 건강히 살고 싶기에 이글로 액땜하려 한다. 천지신명 부처 예수 알라 님께. 저는 카드 영수증을 계속 보고 싶습니다. 10년 후에도 50년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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