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참혹한 생존의 연대기
"어떤 체질이라도 척하면 삼천리로 진료해야 실력자"
2024년 A 병원 보철과 교수님께서 건네주신 이 한마디는, 제 32년 투병사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가장 뼈아픈 위로였습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게보린 한 알에 얼굴이 부어오르고 항생제 주사 한 방에 생사를 오가며 제가 깨달은 것은 딱 하나입니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사람'의 다름을 인정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1. 마취 없이 살을 꿰매야 했던 그날의 눈물 1998년, 22살의 저는 외과 수술대 위에서 마취제 없이 생살을 봉합해야 했습니다. 마취제를 쓰면 쇼크가 올 것이고,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할 수도 없었던 그 비인간적인 이지선다(二枝選多). 당시 담당 의사가 제게 건넨 말은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목숨이 위험하니 포기하고, 운전도 배우지 마십시오." 그날 제가 흘린 눈물은 32년이 지난 지금, 왜 대한민국 의료의 필수의료가 붕괴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입니다.
2. 10만 원짜리 검사와 754만 원의 가치 오늘날의 의료 현장은 어떤가요? 숙련된 전문의가 하든, 전문 간호사가 하든 고위험 검사인 '골수천자'의 수가가 같다면, 그 시스템은 정상입니까? 미국에서 754만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술이, 우리 땅에서는 10만 원짜리 '공산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저처럼 알레르기 이력이 복잡한 환자에게 '정밀한 처치'는 곧 생명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 정도면 됩니다"라는 기계적 매뉴얼만을 강요합니다. 이 기계적인 배급제식 의료가 결국 응급실 뺑뺑이를 만들고, 성실한 의료진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3. 이제는 기록을 넘어 정바카라으로 저는 1994년부터 오늘까지 겪은 치명적인 약물 사고, 예방접종 불가 판정, 그리고 이름조차 밝히기 어려운 부작용들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제 아픔의 연대기이자, 국가가 방기한 안전망의 실체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의료진의 밥그릇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특이체질' 환자도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환자 이력 공유 시스템]입니다. 어딜 가든 제 알레르기 정보가 즉각 공유되고, 의사가 비용 눈치를 보지 않고 최선의 약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의료가 다시 세워져야 할 이유입니다.
4. 사랑하는 내 하얀 방 안의 조카들에게 언론은 의사를 악마화하고, 국가는 실패한 행정을 감추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밤새워 당직실 간이침대에서 웅크려 잠든 그 젊은 의사들의 눈빛이 얼마나 맑은지, 그들이 환자의 숨소리 하나에 얼마나 절박한지를 말입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내 조카들아, 부디 외로워하지 마라. 너희를 범법자로 내모는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너희의 고결한 땀방울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환자 이모가 여기 있다. 우리가 함께 외치는 이 정공법이, 머지않아 대한민국 의료의 따뜻한 봄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