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선출(FIFO)의 환상을 깨뜨리는 우선순위 큐와 긴급도평가의행정
빛바랜 누런 표지의 스프링 노트 한 권이 상담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수백 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그리고 '접수 일자'가 빼곡히 적힌 시설의 입소 대기자 명부다. 한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민다. 5년 전, 시설 입구에서 받아 들었다는 번호표였다.
"선생님, 제가 5년 전에 여기 12번으로 대기를 걸어뒀습니다.
그동안 이 악물고 혼자 버텼는데, 이제 제 무릎도 다 망가지고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잡혔어요. 제 순서는 도대체 언제쯤 오는 겁니까?"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과 핏발 선 눈등을 바라보는 내 목구멍 안쪽으로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걸린다. 모니터를 켜고 내부 인트라넷의 입소 관리 데이터베이스를 열어본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순번은 12번에서 단 세 칸밖에 당겨지지 않았다. 그사이 시설의 정원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5년 전 대기자가 아닌, 불과 두 달 전 혹은 지난주에 신청서를 접수한 '낯선 이름'들이었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복지시설은 은행 창구처럼 먼저 온 순서대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든 잔인한 행정적 진실 앞에서 어머니는 말을 잃었다.
대기표만 쥐고 있으면 언젠가 내 차례가 오리라 믿으며, 밤마다 자해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피눈물로 세월을 버텨낸 어머니의 5년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침묵하며 줄을 서 있는 선량한 약자들을 끝없는 대기열의 미로 속에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다수의 국민과 초임 슬롯복지사들조차 복지 전달체계를 '선입선출(FIFO: First-In, First-Out)'의 정직한 줄서기 메커니즘으로 오해한다.
먼저 와서 대기 명부에 이름을 올렸으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공공 복지 시스템과 장애인 거주시설 인프라는 결코 선입선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복지 행정의 기저를 지배하는 진짜 알고리즘은 네트워크 스위칭 공학에서 말하는 '우선순위 큐(Priority Queue)'이자 엄격한 '긴급도 필터링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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