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 일방 퇴소를 차단하는 법적 방패와 24시간 전담 돌봄의 실재
콰앙―!
정적을 찢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아크릴 가림막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순식간에 상담실 안쪽이 깨진 파편과 흩날리는 A4 서류 더미로 아수라장이 된다. 성인 남성의 체격을 훌쩍 넘긴 한 이용인이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며 귀를 찢는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의 팔뚝은 이미 스스로 물어뜯어 피멍이 든 상흔투성이였고, 눈동자는 극도의 공포와 과각성으로 붉게 충혈되어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배회했다.
입사한 지 두 달 된 신입 슬롯복지사는 구석으로 물러서 사시나무 떨듯 손을 떨고 있었고, 곁에 선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무릎부터 꿇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죄송합니다, 선생님들… 우리 아이가 집에서 안 먹던 약을 바꿔서 그래요. 제발 쫓아내지만 말아주세요."
어머니의 이마가 차가운 리놀륨 바닥에 닿았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복지시설의 문턱에서 "당장 짐 싸서 나가라"는 퇴소 통보를 받아온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동물적인 공포의 반응이었다. 시설장의 얼굴에는 곤혹감과 냉정함이 번갈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발달장애인의 격렬한 자해와 타해는, 일상의 궤도를 단숨에 이탈시키는 통제 불능의 파열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관은 이 소음 앞에서 가장 쉽고도 비정한 결론을 내린다.
"더 이상 저희 시설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을 알아보십시오."
그 한마디에 아이와 부모는 다시 아스팔트 위로 내팽개쳐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장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약자들을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만 시설의 평온을 위장할 것인가.
수많은 기관이 도전적 행동(자해, 타해, 기물 파손, 탈의, 괴성 등)을 이유로 보호자에게 일방적인 퇴소를 요구한다.
그러나 25년 차 행정가의 단단한 법적 언어로 단언하건대, 시설의 이러한 일방적 퇴소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자 행정 처분의 대상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차법)’ 제4조 및 제18조에 따르면, 시설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이용인을 배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일관되게 선언한다. 기관이 긍정적 행동지원(PBS) 전담 인력 배치, 환경 수정, 행동 중재 계획 수립 등 ‘정당한 편의 제공’을 위한 객관적 노력을 다하지 않은 채, 단지 돌발행동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용인을 퇴소시키는 행위는 위법한 차별 행위다. 보호자가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지자체 및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는 순간, 시설은 영업정지나 행정처분의 무거운 사법적 리스크를 마주하게 된다.
과거 최전방 전파정 부대에서 고감도 계측 장비를 다루던 시절을 기억한다.
레이더 수신기에 기준치를 수백 배 초과하는 고전압 과도 스파이크(Transient Spike)가 인입될 때, 조잡한 구형 기기는 퓨즈를 끊어버리고 전원을 강제로 차단(Trip)해 버린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기기의 무능이다. 정밀한 군용 시스템은 스파이크가 들어오는 순간, 서지 억제기(Surge Arrestor)와 저주파 필터를 가동하고 역위상(Anti-Phase)의 신호를 맞부딪혀 소음을 흡수해 버린다.
발달장애인의 거친 도전행동은 타인을 공격하려는 악의적인 테러가 아니다.
비언어적 존재가 극심한 신체적 고통, 감각 과부하, 낯선 환경의 공포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 온몸으로 쏘아 올리는 왜곡된 ‘SOS 조난 신호’이자 거대한 진폭의 노이즈(Noise)다. 그 신호의 주파수를 해독할 장치도, 흡수할 방열판도 갖추지 못한 부실한 시설들이 전원을 뽑아버리듯 아이들을 쫓아내 온 것이다.
바로 이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복지 체계에 도입된 핵심 인프라가 바로 ‘최중증 발달장애인 1:1 통합돌봄 서비스’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존의 1:多 집단 수용 방식으로는 이 고전압 신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전문 훈련을 받은 전담 전문인력을 1:1로 매칭하는 24시간 개별 돌봄 및 주간 개별형 트랙을 신설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통합돌봄 실증 데이터에 따르면, 1:1 전문 개입이 이루어졌을 때 이용인의 도전적 행동은 평균 56.8% 이상 급감했고, 보호자의 돌봄 부담과 피로는 76.6% 이상 완화되는 극적인 신트로피(Syntropy)의 반전이 확인되었다.
성경 마가복음 5장에는 거라사 지방의 광인이 등장한다.
그는 쇠사슬과 고랑으로도 묶어둘 수 없을 만큼 통제 불능의 힘으로 날뛰며, 밤낮 무덤 사이와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의 몸을 찢으며 자해를 일삼았다.
당대 슬롯가 그를 다루었던 방식은 오직 ‘결박과 추방’이었다.
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쇠사슬을 채웠고, 사슬마저 끊어지자 그를 성문 밖 어둡고 축축한 무덤 사이로 내쫓아 유폐시켰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낯설고 거친 에너지를 마주할 때, 화학적 결박(과도한 정신과 약물 투여)을 가하거나 슬롯적 무덤(폐쇄적 격리)으로 추방하는 방식을 택한다. 25년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기관과 종사자들의 상흔 역시 깊다. 물어뜯긴 팔뚝의 흉터, 뜯겨 나간 머리카락,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에 시달리다 신경안정제를 삼키며 출근하는 젊은 교사들의 소진(Burnout)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피조세계의 참담한 파편이다.
부모들은 시설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병원에서 처방받은 최고 용량의 항정신병 약물을 억지로 털어 넣는다.
약에 취해 침을 흘리며 눈이 풀려 멍하니 앉아 있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의 영혼은 소멸해 간다.
진압과 격리, 그리고 마취.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 시스템이 깨어진 인간성을 대하는 유일하고도 비참한 엔트로피의 종착점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라사의 광인을 피해 가지 않으셨다.
배를 타고 풍랑을 뚫고 그 한 영혼을 위해 무덤가로 직접 걸어 들어가셨다. 주님은 그를 묶을 더 굵은 쇠사슬을 들고 오지 않으셨다. 그를 짓누르던 군대 귀신의 파괴적 노이즈를 자신의 권능으로 잠재우시고, 마침내 그를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단정히 앉아 있는’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셨다.
복지 현장에서 이 은혜의 대속적 반전은 전문성과 제도의 융합을 통해 구체화된다.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시설의 일방적 방출을 차단하고 아이의 삶을 지켜낼 세 가지 방어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첫째, 일방적 퇴소에 대한 ‘장차법적 방어권’의 행사다.
시설장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구두 퇴소 통보를 거부하며 ‘정당한 편의 제공 미비에 따른 차별 행위 소명 요청’을 서면으로 요구했다. 퇴소 조치는 시설장 개인의 기분으로 내리는 처분이 아니며, 운영위원회 심의, 관할 구청 보고, 전문 행동 컨설팅 이수 등 법정 절차를 거쳐야 함을 명시하자, 기관의 무단 방출 기도는 즉각 멈춰 섰다.
둘째, 긍정적 행동지원(PBS)의 즉각적 이식이다.
도전적 행동을 ‘제거해야 할 악’으로 보지 않고, 기능평가(FBA)를 통해 행동의 선행사건(Antecedent)과 결과(Consequence)를 해부했다. 아이가 자해를 시작하기 직전, 실내 형광등의 미세한 고주파 깜빡임 소음과 복도의 낯선 음식 냄새가 감각 과부하를 유발했음을 밝혀냈다. 조명을 간접등으로 교체하고, 독립된 진정 공간(Quiet Room)을 확보하며, 물어뜯는 행동 대신 손에 쥘 수 있는 감각 자극 도구를 제공하자 고전압 스파이크의 진폭이 기적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셋째, ‘최중증 1:1 통합돌봄’ 체계로의 포트포워딩이다.
지친 일반 교사들에게 모든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끊어내고, 지자체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국가 바우처가 전액 지원되는 전문 전담인력 1:1 배치를 연계했다. 시설의 재정적·인력적 부담을 국가의 공적 예산으로 전환해 줌으로써, 종사자의 안전과 이용인의 인권이 상호 공존하는 완벽한 임피던스 매칭을 이뤄낸 것이다.
은혜는 무질서가 아니다.
가장 거친 소음의 파동 한가운데로 들어가, 십자가의 저항선으로 그 충격을 흡수하고 상대를 온전케 하는 거룩한 시스템의 안정화다.
부모의 처절한 눈물(50%의 실화) 위에 정밀한 행동과학과 법률적 방패(50%의 공학)가 결합될 때, 무덤 사이의 비명은 마침내 평화의 노래로 바뀐다.
상담실의 거친 파도가 지나가고, 깨진 아크릴 조각들이 말끔히 치워졌다.
아이에게 미지근한 물 한 컵을 건넸다. 거칠게 몰아쉬던 그의 가슴팍이 천천히 가라앉고, 땀에 젖은 이마 위로 엷은 평안이 번진다. 아이는 곁에 앉은 어머니의 거친 손등을 자신의 뺨에 가만히 가져다 댄다. 비명을 지르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구음(口音)은,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리는 가장 순전한 화해의 주파수였다.
우리는 가장 돌보기 힘든 자를 품어낼 때 비로소 문명이라 부를 수 있고, 가장 거친 소음을 품어 안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 부를 수 있다.
도전행동은 시설에서 쫓겨나야 할 결격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슬롯의 돌봄 시스템이 더 깊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지(Grounding)되어야 함을 알리는 가장 절박한 신호다.
창밖의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복도 끝, 고요해진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다이얼을 0.0Hz에 맞춘다.
폭풍은 지나갔고, 연결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