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따르는 건 본능인가...
해연의 시선.
1. 전공 수업의 교차점 ㅡ 색의 온도 ㅡ
학기 초, 미경이 과제 때문에 쩔쩔매며 가장 뜨거운 빨간색을 찾고 있을 때.
준호와 영훈은 각각 이론과 재료를 따지고 있지만,
나는 조용히 미경의 옆에 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내밀었지.
"미경아, 색깔에도 체온이 있대. 손을 잡아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온도 말이야."
당시엔 그저 가교과 전공생다운 다정함인 줄 알았겠지만,
나는 그때 이미 미경의 '체온'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어.
2. 엇갈린 시선 ㅡ 뒷모습의 미학 ㅡ
준호가 미경의 옆모습을 크로키할 때, 미경은 준호의 시선을 느끼며 부끄러워했지.
하지만 정작 미경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은
준호의 등 너머에서 자신을 빤히 응시하던 나의 눈이었어.
미경은 준호가 자신을 그린다고 생각하며 포즈를 취했지만,
사실은 나의 그 지독하게 뜨거운 시선에 몸이 굳어버렸던 거야.
미경의 캔버스 구석에 아주 작게 그려진 누군가의 실루엣은
준호가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서 있던 나였지.
3. 연두색 물감의 진실. ㅡ 비밀 표시 ㅡ
준호의 셔츠 소매에 묻은 연두색 물감. 준호는 그걸 미경과의
장난스러운 스킨십의 증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사실 그 물감은 미경이 나에게 "이 색깔 어때?"라며
나의 옷깃에 먼저 묻히려다 실수로 준호에게 튄 거였지.
미경이 준호의 셔츠를 붙잡았던 건 준호가 좋아서가 아니라,
나에게 보란 듯이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위험한 오브제였던 거 아닐까..
4. 나의 가정교육 대상
진실게임 중 준호가 물었지. "네가 제일 공들여 가꾸고 싶은 사람도 있어?"라고.
나는 대답 대신 미경의 술잔에 물을 채워줬어.
가교과 전공인 나에게 보살핌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고,
나의 관리 대상 1호는 처음부터 우주회도, 영훈도, 준호도 아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미경의 캔버스였던 거야.
나의 기습 키스가 단순한 돌발 행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산된 체크메이트 였다는 거 알 수 있겠니
모르겠니..
이런 범생이들.
니들이 사랑을 알겠냐만은..
.
그리고 영훈의 시선..
생략한다.
국민학교부터 십 년 넘게 알아온 미경을 전혀 모르는
둔한 녀석.. 곰 같은
그런 녀석이기에.
20000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