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회 8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by홍길동



https://youtu.be/p_8gjY0DQfU

글 내용과는 의미 없는.....


1.

민박집 앞마당,

해연이가 미경이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모른다.

처마 밑에는 덩그러니 남겨진 노란 우산 하나와,

빗물에 젖어 잉크가 번져가는 준호의 영수증 크로키뿐.

준호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기괴하게 들려오고

영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해연이가 사라진 길목만 노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꾸고있다.


“야, 이영훈.”


준호가 먼저 입을 떼. 목소리에 힘이 다 빠져 있다.


“... 말해라.”


“우리 공부 헛했다, 안글냐? 난 구도 잡는 법만 배웠지 정작 구도 깨는 법은 몰랐고,

넌 기회비용 따지다가 기회를 날려버렸잖냐.”


영훈이 피식 거린다. 녀석의 안경 위로 빗방울이 맺혀 눈동자가 흐릿해 보이고.


“해연이 게... 우릴 아주 제대로 가르쳤네.

사랑은 관찰이니 투자가 아니라.. 걍 박치기라고.”


영훈이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주병을 발로 툭 차니 병이 맥없이 굴러가 진흙탕에 박힌다.


“준호야. 니 그림 속 미경인 이제 어떡할 거냐? 해연이가 다 베려놨는데.”


준호는 비에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영수증 조각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인다.

손끝에 닿는 종이가 금방이라도 헤져 녹을 것 같다.


“..베린게 아냐. 이게 진짜 현실의 색깔이지.. 우리가 덧칠해논 상상 속 미경이가 아니라.”


준호가 젖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영훈이의 어깨를 툭 치며


“가자. 감기 걸리겠다. 으스스한게 안춥냐?”


영훈이가 한번 더 픽 하고 웃는다. 그러고는 안경을 닦다가


“춥네.. 난 이제 파산이네. 생각할수록 (뭔 말을 하려다 삼킨다) 이게 대체 뭔지..”


영훈의 삼킨말은 지레 짐작이 가고도 남는듯..

둘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로의 처량한 몰골을 마주 보며 짧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들의 여름 MT는 그렇게 강제 종료되고 있다.



2.

기차 차창 밖으로 강촌의 풍경이 멀어지고 있다.

객실 안은 지독할 정도로 고요하다.

어제 빗속에서 벌어진 그 사건 이후로,

네 명 사이의 공기는 완전히 분해되어 버린 것 같다.

준호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창밖만 보고 있다.

녀석의 무릎 위엔 잉크가 번져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어제 그 영수증이 놓여 있다.

예술학 전공자답게 완벽한 구도를 꿈꿨겠지만,

결국 가장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건 녀석이 아니다.


미경 옆자리에는 해연이가 앉아 있다.

어제의 그 서늘한 기세는 어디 갔는지,.

해연이는 평소처럼 다정한 얼굴로 미경에게 귤을 까서 건넨다.

하지만 그 손끝이 미경의 손등에 닿을 때마다

어제 입술에 닿았던 그 뜨거운 감촉이 되살아나는 듯 미경은 자꾸만 몸을 움츠린다.


"미경아, 왜 그래? 어디 아파?"


해연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마치 "너희 셋의 유치한 게임은 내가 끝냈어"라고 선언한 승리자의 여유 같은.


통로 건너편에 앉은 영훈이는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경제학 전공자답게 밤새 손익계산서를 새로 두드린 걸까.

녀석의 얼굴엔 평소보다 더 차가운 냉소가 서려 있지만,

끄적이는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기차가 터널로 진입하며 객실 안이 어두워졌을 때,

준호가 갑자기 이어폰을 빼고 나직하게 읊조린다.


"얌마, 이영훈. 너 전공 서적 다 팔아쳐라. 니 계산기에 없는 변수가 너무 많잖냐."


영훈이가 멈추고 준호를 쏘아본다.


"너야말로 그 젖은 영수증이나 버렴마. 이미 망친 스케치 붙잡고, 미련한 놈."


두 남자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부딪힌다.

하지만 어제처럼 미경을 사이에 둔 쟁탈전이 아니다.

그건 해연이라는 거대한 변수 앞에 패배한 동지들끼리의 비릿한 확인 같은 뭐 그런 거다.


해연은 미경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가늘게 속삭인다.


"미경아, 서울 도착하면 내 자취방으로 올래?

좀 보여줄 게 있거든."


말똥거리는 해연의 시선을 뒤로하고는

미경은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준호의 선도,

영훈의 수치도 아닌,

해연의 선명한 색칠에 덮여버린

그녀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듯.


청량리역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


..


.



20000



끝.









((30분은 어느새 30년을 넘어....
본격 50대의 러브스토리를 끄적여 볼까 합니다. 능력이 된다면...))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