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의 착각
새로운 룸메이트는 같은 회사의 스페인 남자 직원을 좋아했다. 직원들 중에 유일하게 유럽인이라 모두의 호감을 사는 듯했다. 스페인 남자는 보통 잘생기기로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를 보니 언제나 예외는 있는것 같다. 내가 보기엔 눈이 많이 느끼하고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했는데 모든 여직원들에게 끼 부리는 모습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부터 남자 때문에 상처받는 친구들을 많이 봐서인지 이번엔 또 누가 상처를 받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여지없이 내 룸메이트가 걸려들었다. 그녀는 집에 오면 항상 그에 대한 얘기를 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만났고 들어와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했는데 그가 그녀에게만 친절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이번에도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나의 조언 따윈 그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스페인맨도 자신을 많이 좋아한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 간단히 원피스 입고 하는 스몰 웨딩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몰 웨딩?"
"네. 원피스를 좀 보고 있어요"
"......"
이건 또 웬 김칫국... 왜 나의 룸메이트들은 하나같이 쉽게 희생양이 되는 걸까... 왜 그렇게 쉽게 착각하는 걸까? 그 스페인맨은 전혀 그녀와의 결혼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텐데 굳이 그녀에게 기분 상할 말은 할 필요 없었다. 조심하고 잘 봐야 할 것 같다고 알려주었으니 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뻔한 결과는 드러났다. 친한 언니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그 늦은 시간에 그녀가 방에서 나와 나에게 말했다.
"언니... 끝났어요."
"뭐가?"
"저랑 결혼생각은 없대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대요."
끝났다니... 시작은 했었는지... 결혼 얘기를 먼저 했나? 무슨 자신감으로?
뭐 이미 뻔한 사실을 그녀가 그렇게 충격받은 듯 이야기하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순간 당황했다.
자존심이 상할테니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녀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고... 그랬구나... 잘 됐어. 별로 좋은 사람 같지는 않았어"
이 말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언니한테 빨리 얘기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그들의 시작이 무엇인지 알수 없고 그녀를 비롯해 몇명의 직원들이 스페인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뭘 얘기하지 말라는 건지. 그녀는 이전 베이징 룸메이트 샨샨이나 지아지아와 달리 엉엉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다녔고 회사 사람들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덕분에 난 한동안 휴일을 집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