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수박 한 통으로

은퇴 부부의 찰떡쿵

by그님


날씨가 더워 잠이 달아난 걸까

나이 탓일까

깼다가 잠들기를 여러 번.


깨어 있었다.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 앞에 섰다.

내편이 들어오는 순간

"왕~"


움찔하며 화들짝 놀라는 내편.

"아구. 놀래라."

"성공~ 아이 재밌어."

"뭐요? 재밌긴 뭐가 있어요. 신랑 깜짝 놀래켜놓고."

"뭘 놀래. 귀신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당신 잠자고 있는 줄 알았죠. 그러다가 문 열자마자 그렇게 하면 놀래죠."

"놀랐어?"

"그러면 놀라지 안 놀라요? 참내. 이제 당신 안 깨울 거예요. 알아서 하구려."

"고마워. 늦잠 자도 깨우지 마."

"그건 아니죠. 늦잠 자면 조탁법으로 두드려 깨워야죠."


바로 꼬리를 내리는 내편.

아침을 깨우는 즐거운 놀이닷.

놀라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아침 식탁을 보니 단호박을 찌고 달걀말이를 준비한 내편.

"앉구려. 맛있게 들어요. 건강식이에요."

라테 한 잔을 내려 단호박과 김치, 달걀말이를 먹었다.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탁구장에 갈 시간을 체크하는 내편.

"아구, 탁구장에 갈 시간인데 늦겠어요."

"탁구장 가셔. 설거지는 내가 할게."

"설거지하고 가도 안 늦어요."

몇 개 안되는 컵과 접시, 수저, 젓가락을 닦고 손을 털고 나왔다.


뒤이어 싱크대로 갔더니 수박 껍질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보, 수박 껍질은 왜 안 치웠어?"

"난 몰라요. 당신 드시기 편하게 잘라서 넣어 놨으니까 껍질은 당신이 알아서 정리해요."

"알아서 하라고? 마무리까지 잘 해야지. 종량제 봉지에 넣기 좋게 깍둑썰기로."

"아~ 난 그거 못해요. 당신이 잘 하잖아요."

"당신, 하기 싫으니까 그렇지?"

낄낄낄 웃는 내편이닷.


아침 준비를 하고, 수박도 잘라서 냉장고에 넣어둔 성의를 봐서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마에 수박 껍질을 하나씩 올려 깍둑썰기를 했다.


"거봐요. 그런 건 당신이 잘 하더라고요."

"뭘 잘해? 다 잘할 수 있거든. 다음부터 못한다고 빼지 말고 마무리까지 잘 해주셔."

"당신이 할 일을 만들어 주는 게 내 임무에요."

"임무가 어딨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어."


말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즐겁다고 둘이 깔깔 낄낄 웃는 아침.

작은 투닥거림 같은 소음에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여보, 수고 하구려. 나 다녀올게요."

"응, 재미있고 놀고 오셔."

남은 수박 껍질을 썰어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


올해 처음 사서 먹은 수박.

수박 껍질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고 걱정하는 내편.

수박 먹기를 포기했다.

당뇨 전단계라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내편의 걱정을 날려 주고 내 건강도 지키고.

좋게 생각하면 수박이 꼭 먹고 싶거나 그립지는 않다.

나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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