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덕분에 패스한 맨발걷기

은퇴 부부의 찰떡쿵

by그님


오병이어 학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길 건너 소운동장으로.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나무 그늘 드리워진 곳만 일 자로 걸었다.

왔다리갔다리 되돌아 돌고 도는 걷기.

나무 그늘 밖은 찜질방 같은 더위가 훅 들어왔다.


"당신은 그늘만 걸어? 햇빛에도 나가야지."

"나는 얼굴이 새까매서 안돼요. 당신은 허연하니께 걸어도 되고요."

"나도 타거든. 덥고."

"당신은 더 태워도 돼요. 나만큼은 아니니까. 탁구 쳐서 실실 따라 걸을 게요."

같은 길을 걷지만 따로 또 같이.


마주칠 때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안녕하세요?"

본체만체 지나가는 내편이닷.


덥다. 땀났다.

"여보, 그만 걷자. 더워."

"두어 바퀴만 더 돌아요."

코치가 따로 없다.

선수인 나는 두어 바퀴 더 걸었다.


"됐어요. 이제 발 씻고 집에 갑시다."

세면대로 가서 발을 씻고 집으로 터벅터벅.

"저녁 먹고 맨발걷기 한 번 더 해요."

"뭐라고? 한번 이면 됐지. 또 걸어?"

"당신은 당뇨 전단계라서 밥만 먹으면 걸어야 해요."

나보다 더 나의 건강을 염려해 주는 내편.


내편은 우체국 봉사. 나는 도서관 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갑시다."

"어딜 가?"

"맨발 걷기요."

"안 가고 싶은데."

"가야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 당신 위해서예요."


쏴아~ 쏴아~

쏟아진다. 신나게 창문을 때리는 소나기.

"이? 소나기 내리네. 햐~ 일기 예보 끝내 주네요."

"못 나가겠네."

"조금 있으면 그쳐요. 나가도 돼요."

완강한 내편이닷.


그칠 듯한 소나기는 이어서 더 거칠게 창문을 두드려 댄다.

'요훗~'

마음으로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아이구. 아까 나갔어야 하는데."

"비 쫄딱 맞으려고 나가? 나가기 전에 소나기 내려서 다행이지."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맨발걷기 나갔는데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멈출 줄 모르고 깜깜해졌다.

우산 없이 나갔던 터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비를 맞으며 집에 왔었다.


오늘은 소나기가 내 편이 되었다.

나가기 전에 쏟아져 맨발걷기는 상상 속으로.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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