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선풍기가 열 일하는

은퇴부부의 찰떡쿵

by그님


7월 첫날.

장마가 늦었다.

6월 중순이나 말경이면 시작되던 장마가

7월 첫날인 오늘 시작을 알리는 듯 비가 내렸다.


잠에서 깨어 문 열고 거실로 나오자 열 일 하는 세탁기 소리.

"아고~ 장마래요. 어제 빨래할 걸 그랬어요."

"장마 때 해 안 뜬대?"

"해가 왜 안 떠요? 당연히 뜨죠."

"그러니까~ 해가 뜨다 비가 내리다 하는 거지. 뭘 장마라고 걱정해."


"해 뜬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많으니까 그렇죠. 비가 내리면 빨래가 잘 안 마르잖아요. 그리고 냄새나고요."

"당신 말은 맞는데 되는대로 살아.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빨래 걱정하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 거야."

유난히 해 뜬 날과 비 오는 날에 민감한 내편.

해 뜬 날은 빨랫감이 없는지 살피고 빨래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크다.

빨래에 진심으로 집착하는 시어머님은

구순인 지금도 홑이불이나 커튼을 걷어 달라고 하시고

직접 애벌 손빨래 다음에 세탁기를 돌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밀가루 풀을 쑤어 이불과 커튼에 풀을 먹인 후 넌다.


신혼 초 가르쳐 주셔서 여러 번 실습을 했음에도

난 편한 게 살기로 했다.

여간 번거롭고 힘든 게 아니었다.

세탁기가 제품으로 나온 것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 손이 닿아야 빨래가 깨끗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시어머님이시다.

분가해서 나온 후로 난 풀 쑤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내편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탁구장에 갈 준비하는 내편.

"여보, 빨래 다 되면 널어줘요. 내가 건조대 세워 놨어요."

"알았어."

대충 흘려듣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세탁기에서 멜로디가 울린다.


세탁기 앞에 서서 뚜껑을 열었다.

빨래를 꺼내 잘 펴지게 한번 탈탈 털었다.

내편이 신신당부한 그대로.

세탁기에서 빨래 꺼낼 때 하나씩 집어 털면

먼지가 날아가고 빨래가 반듯하게 펴진다는 내편의 말을 잘 듣는 나.


바구니를 들고 빨래 널려고 거실로 나와

선풍기의 방향을 보고 펼쳐진 건조대 보자 웃음이 나왔다.

빨래를 말리려 기다리는 선풍기.

건조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내편의 큰 그림이닷.


비가 내리니까 빨래 건조가 더디 되면서 냄새날까 봐

선풍기까지 돌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혼자인데 왜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지.

웃었다. 입을 귀에 걸고 웃었다.


건조대에 걸려 있는 옷걸이에 옷을 얌전히 걸어 듬성듬성 틈을 주고

옷을 넌 후 양말도 겹치지 않게 정성껏 널었다.

빨래에 진심인 내편의 행동에 나도 정성스럽게 널었다.


건조대 방향으로 기다리고 있는 선풍기의 버튼을 꾹.

자연 바람은 아닐지라도 내편의 마음처럼 뽀송한 바람을 날렸다.

장마 기간 비 내리는 날 빨래하게 되면

선풍기는 한두 시간이 아닌 하루 종일 약풍으로 빨래를 말린다.

냄새에 민감한 내편이라서.


나도 꾸리 한 냄새는 안 좋다.

선풍기로 말릴 수 있다는 걸 내가 알려줬다는 건 안 비밀.

매년 장마 때마다 우리 집 선풍기는 오늘처럼 열을 내며 일한다.

빨래 말리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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