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어디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테마, 솔로, 코러스로 이해하는 재즈 스탠더드의 구성

by파비앵

*오늘부터 맴버십이 아닌 일반 글로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즈는 구성을 잘 모르고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익숙한 선율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악기들이 "이게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선율을 연주하기도 해요

한 악기가 한참 연주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이어받고, 그렇게 음악이 흐르다가 어느샌가 내가 아는 멜로디가 다시 나타나요.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그 가운데 부분이 길고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어디까지가 한 부분인지, 연주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다음으로 넘어가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중음악이나 밴드 음악에서는 어떤 부분이 나올지 예상하거나 외우고 있는 부분이 많지만 악기의 독주 구간이 비교적 많은 재즈에서는 이걸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 안에서도 곡의 형식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들리는 선율은 분명히 다르지만, 연주자은 곡의 구성에 따라 반복을 거듭하고 그 속에서 즉흥연주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형식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재즈 스탠더드로 분류된 곡들로 연습해 보는 것이 유리합니다. 같은 곡을 여러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했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편합니다.


또한 이런 방식의 편곡구성을 알아두면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이나 대중음악이나 밴드음악의 틀을 벗어난 다른 구성들의 음악도 파악하기가 매우 수월해집니다.




먼저 재즈 스탠더드(Jazz Standard)라는 말부터 알아두면 좋습니다.

스탠더드는 여러 음악가가 오랫동안 거듭 연주하면서 공통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곡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재즈곡으로 고안되어 만들어진 곡도 있고, 처음에는 대중가요로 불렸지만,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게 된 곡도 있어요. 특정한 박자나 형식 하나를 가리키는 이름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명곡 모음집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같은 제목의 곡을 여러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음악가의 음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연주하는 악기와 속도, 분위기가 달라도 그 곡을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한 멜로디와 음악적 틀은 유지됩니다.

스탠더드를 악기로 연주할 때 자주 만나는 구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재즈의 모든 연주가 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를 이해할 때 유용한 출발점이 됩니다.




재즈 스탠더드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헤드(Head)입니다. 연주가 시작되면 곡의 주제 선율을 항상 들려주는데, 이것은 우리가 테마라고 부르는 멜로디입니다. 재즈에서는 이 주제 선율을 헤드라고 합니다.


보통은 해당 악기 구성에서 멜로디를 연주하는 리더가 연주합니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이뤄진 피아노 트리오에서는 피아노가 할 때가 많고, 색소폰이 추가된 콰르텟에서는 색소폰이 테마를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악기가 화음을 넣거나, 또는 동시에 같은 멜로디를 함께 들려주기도 합니다.


연주자에 따라 리듬이나 장식을 조금 바꿀 수 있지만, 기본 멜로디를 기억할 수 있다면 테마를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테마는 32마디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걸 8마디를 한 덩어리로 보면 총 4개의 덩어리가 한 개의 테마를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각각의 조각에 알파벳 이름을 붙여서 구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A 8마디 → A 8마디 → B 8마디 → A 8마디


처음 여덟 마디에서 A가 나옵니다. 다음 여덟 마디에서는 비슷한 흐름의 A가 이어집니다. 세 번째 여덟 마디에서 B가 대비를 만들고, 마지막 여덟 마디에서 A가 돌아옵니다.


이때 A라고 표시한 부분들이 모든 음이나 코드, 리듬까지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의 끝이 조금 달라지거나 다음 구간으로 연결되는 방식이 바뀔 수 있어요. 하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매우 비슷하고 기본적인 선율과 화성의 관계가 A로 묶기 편합니다. 한편, 대비를 만드는 B는 브리지(Bridg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테마를 들려준 뒤에는 솔로(Solo)가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한 연주자가 중심에 나서서 즉흥적으로 선율을 만들어가는 부분을 뜻합니다. 솔로라고 해서 다른 악기가 모두 멈추거나 연주를 중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주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중심이 되는 연주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아요.


솔로가 끝난 뒤에는 테마가 다시 돌아옵니다. 제일 앞에서 처음 들었던 멜로디가 다시 나타나면서 음악을 정리하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흐름을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테마 → 솔로 → 테마


실제 연주에서는 앞에 인트로가 붙거나, 여러 사람이 차례로 솔로를 하거나, 마지막 테마 뒤에 별도의 끝맺음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테마 다음에 솔로가 온다는 것을 기억해 두시면 좋습니다.


테마에서는 A의 멜로디를 듣고 “처음 부분이 돌아왔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에서는 그 자리에 새로운 선율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준을 멜로디로 잡으면 헷갈릴 수 있습니다.

마디의 구성과 화성의 흐름을 기준으로 삼으면 편한데, 화성의 흐름은 어떤 코드들이 어떤 순서와 길이로 이어지는지를(코드진행) 뜻합니다. 연주자들은 그 틀 안에서 현재 위치를 공유하며 새로운 음과 리듬을 만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반주가 매번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아노나 기타가 코드를 짚는 리듬과 음의 배치는 달라질 수 있고, 베이스와 드럼도 솔로에 반응하며 연주를 바꿀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형식 안에서도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살아있는 것처럼 계속 움직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코러스(Chorus)라고 불리는 단위를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스탠더드 곡 안에서 이어지는 모든 구성들은 헤드와 같은 AABA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솔로는 AABA를 수 회씩 반복하면서 연주자가 충분히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 AABA가 한번 반복될 때 우리는 "한 코러스"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


테마(1) → 솔로(2) → 테마(1)


만약 테마를 색소폰이 연주한 후에 이 폼으로 두 바퀴(AABA-AABA)를 연주했다고 하면 "두 코러스의 솔로"를 한 것이 됩니다. 이 경우에 색소폰 솔로의 길이는 64마디가 됩니다.

여기서 더 이어서 할 수도 있지만 솔로를 중단하고 다른 연주자에게 솔로 시간을 넘겨줄 때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코러스를 꽉 채워서 넘기게 됩니다. 중간에 아무 데서나 끊고 넘기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는 다음 연주자가 첫 A부터 연주할 수 있도록 솔로 합니다.


앞에서 팝의 구조를 설명할 때는 코러스를 후렴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지만 재즈에서 “한 코러스 연주한다”라고 할 때는, 곡의 형식을 한 바퀴 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같은 용어라도 사용되는 음악에 따라 가리키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처음부터 이 변화를 모두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테마를 들을 때 여덟 마디씩 네 묶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먼저 익혀보세요. 솔로가 시작된 뒤에도 그 길이를 따라가 보면, 선율이 달라진 상태에서 같은 위치를 지나가는 감각을 조금씩 잡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시 곡을 들으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해 봅시다. 여기에서는 인트로와 별도의 엔딩은 생략하고 아래의 곡에 대해서 진행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youtu.be/I5TXjbHzXTo?si=DjhasEni_XgR6e1M


00:06~04:57 까지만 우선 들으시면 됩니다.

테마(AABA) 1 코러스 → 피아노 솔로 2 코러스 → 플루트 솔로 2 코러스 → 베이스 솔로 1 코러스

처음에는 테마로 피아노와 플룻이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이어서 피아노는 다음 두 코러스, 플룻이 다시 두 코러스를 이어받고, 마지막에는 베이스가 한 코러스 솔로를 합니다.


이 영상에서는 언제 봐도 고정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같은 곡을 매번 다르게 연주할 때가 많습니다. 누가 몇 코러스씩 연주할지 정해놓지 않고 연주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연주한 솔로 주자가 솔로를 끝내고 헤드로 돌아가자는 표현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거나 가볍게 두드리면서 주변 연주자에게 신호를 줍니다.





잘 분간이 되지 않을 때에는 테마의 멜로디 최대한 익숙하게 만든 후 속으로 떠올리며 따라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들리는 솔로 뒤에서 원래의 멜로디가 어느 지점에 와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연주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곡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숫자로 세던 마디와 기억하고 있는 멜로디가 서로 기준이 되어줍니다.


중간에 위치를 놓쳤다면 다음에 테마나 큰 리듬이 돌아오는 지점에서 다시 확인해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테마가 나오고, 솔로로 이어지고, 다시 테마로 돌아오는 큰 흐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다음에 솔로가 몇 바퀴 이어졌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재즈의 솔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긴 연주처럼 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 코러스의 길이를 알게 되면, 연주가 곡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따라갈 기준이 생깁니다. 익숙해지면 신경 쓰지 않아도 지금 어디 파트이고 어떤 악기가 몇 번째 코러스 솔로를 하고 있는지가 자연스레 들립니다.


이번에는 재즈 스탠더드의 형식 중, AABA 서른두 마디만 한 바퀴로 삼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ABAC와 12마디 블루스를 함께 살펴보며, 곡마다 그 한 바퀴의 모양과 길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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