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래 완전하다

by전영칠

'근원에 대한 관상(묵상)'시리즈는 관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 관상(觀想)은 '사랑의 고요한 인식' 혹은 '신적 현존에 온전히 잠겨 쉬는 응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관상(觀想)은 인간이 머리로 생각(想)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맑게 비워 신적 실재가 영혼의 눈(觀)에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내맡기는 직관적 머무름을 뜻합니다.)





118. "우리는 본래 완전하다"



1) 기독교에서의 원죄


원죄는 인류의 첫 시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을 말한다.

그 결과로 인류는 실락원으로 추방되었다.

원죄의 결과로 인해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및 비교의 인자가 대대로 유전자 속에

전해져 인류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인간의 욕심과 이 수인성근성(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이 결탁하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


인간은 신이 낳았다. 신은 완전완미하다. 신이 낳은 자식인 인간도 완전완미하다.

우리는 본래 완전하다.


인간의 욕심과 이 수인성근성(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이 결탁해

괴물이 된 인간들이 저지른 사건,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수인성근성은 뭔가?

인간이 본래 완전하므로 수인성근성인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는 허상이다.

그것은 원래 없는 존재다.

원죄로 인해 생겼다며?

원죄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인간은 신의 아들딸임으로 완전완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2) 인간은 믿음대로 된다.


나는 불완전하다. 그러면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나는 완전하다. 그러면 그렇게 완전한 존재가 된다.


인간은 신의 자식이므로 완전하다.

이것은 믿은의 차원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다 - 이것은 믿음으로 이해하는 경지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다. - 이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자연스러움의 차원이다.

신과 인간도 자연스러움의 차원이다.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신의 아들 딸이다. 신은 본래 완전완미하다.

그러므로 나도 본래 완전완미하다.

거기에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 따위 먼지가 낄 틈이 없다.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는 실체 없는 허상일 뿐이다.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비교는 모두 걷어 치울 먼지와도 같은 존재일 뿐이다.


단지 이것은 있다. 그것이 유전자를 타고 대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원래 없는 허상일 뿐이니 '그들의 정체를 알면 된다'.

원래 없는 허상들이니 '즉시 내려놓으면 된다'.

수행은 이런 내용과 행동에 대한 확인 행위이다.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는 것이 수행이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플 이유가 없다. 그것을 나와 비교할 이유가 없다.

삼촌이 출세를 해도 부러울 이유가 없다. 그것을 나와 비교할 이유가 없다.

나는 본래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뿐이다.


홍인대사가 불교의 혜능에게 법맥을 전수한 것은 혜능이 인간이 본래 완전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종교적 천재 아디 샤카라가 "신(브라흐만)만이 진실이고, 세계는 마야(환영)이다. 개별 영혼은 신(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라고 한 것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나는 본래 원죄를 짊어진 죄인이다."라는 말 역시 환영이다.

그렇게 되면 평생 죄인으로 산다. 그가 믿는 믿음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원죄는 대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없는 허상이니 '그들의 정체를 알면 된다'.

그리고 '즉시 내려놓으면 된다'. 나머지는 그것을 환영임을 확인하는 행위로 수행과 기도, 관상(觀想)을 하면 된다. 확인 수행과 기도, 관상은 환영에 대한 일종의 확인사살이다.


"그대는 죄인이 아니다. 그대는 본래 이미 완전하다".

(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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