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회사 일부터 해

by시노


최대리는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부품이요?”

상대가 뭐라고 말했다.

최대리는 메모지를 끌어당겼다.

“김 대리하고 거래하셨어요?”

잠시 들었다.

“아, 소개받으셨다고.”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지금 외근 나갔습니다.”

상대가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오후에는 들어올 겁니다.”

“네. 전해드릴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메모지를 준석 바카라상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전화가 울렸다.

최대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 * *


준석은 거래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방부터 내려놓았다.

구매 담당자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요.”

“죄송합니다.”

“김 대리.”

“네.”

“아침에 연락 주기로 했잖아요.”

“확인이 늦었습니다.”

“그건 알아요.”

담당자가 바카라상 위 서류를 한쪽으로 밀었다.

“생산팀에서 나만 잡아요.”

“오늘 오후에는 출하된답니다.”

“그건 나도 들었어요.”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담당자가 말했다.

“공장에 내가 전화했어요. 김 대리 기다리다가.”

준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바쁘면 바쁘다고 해요.”

“네.”

“안 됐으면 안 됐다고 하고.”

담당자가 서류 하나를 준석 앞으로 밀었다.

“기다리게만 하지 말고.”

준석은 서류를 받았다.

수량을 한번 훑었다.

“이게 답니까?”

“일단은.”

지난번보다 줄어 있었다.

준석은 더 묻지 않았다.

서류를 가방에 넣고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담당자가 준석을 불렀다.

“김 대리.”

“네.”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준석은 잠깐 서 있었다.

“아닙니다.”

“그럼 됐고.”

준석은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 * *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바카라상 위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준석이 집어 들었다.

최대리가 말했다.

“너 찾더라.”

“여기서요?”

“어.”

준석은 메모에 적힌 회사 이름을 봤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뭐래요?”

“부품.”

준석의 손이 잠깐 멈췄다.

최대리가 물었다.

“거래처야?”

“아닙니다.”

“그럼?”

“아는 거래처에서 제 번호를 알려줬답니다.”

“뭘 하라고?”

“뭐 하나 알아봐달라고요.”

“우리 거?”

“아닙니다.”

최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바카라상 위에 있던 서류를 집어 준석에게 내밀었다.

“이거 오전에 네가 확인하기로 한 거지?”

“예.”

“아까 또 전화 왔어.”

“죄송합니다.”

“나한테 할 말 아니고.”

최대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의자를 당기다가 말했다.

“회사 일부터 해.”

준석은 손에 든 서류를 봤다.

“예.”


* * *


오후에는 메모를 펼쳐볼 틈이 없었다.

납기를 다시 확인하고, 견적서를 고쳤다.

미뤄둔 거래처에도 전화를 돌렸다.

최대리가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이거 다시 봐.”

준석이 숫자를 확인했다.

“잘못 썼네요.”

“요즘 왜 그래.”

“죄송합니다.”

최대리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한테 죄송하단 소리 그만하고.”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틀리지나 마.”

최대리는 돌아갔다.

준석은 견적서를 다시 작성했다.

바카라상 한쪽에 처음 보는 회사의 전화번호가 놓여 있었다.

준석은 메모를 뒤집었다.

다섯 시가 넘어서야 다시 펼쳤다.

잠깐 보고 접었다.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 * *


회사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공중전화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준석은 그대로 지나갔다.

조금 더 걸으니 빈 전화부스가 하나 보였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메모를 펼쳐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상대가 받았다.

“오늘 회사로 전화 주셨죠? 김준석입니다.”

— 아, 김 대리님.

목소리가 금세 밝아졌다.

— 기다렸습니다.

“밖에 좀 나와 있었습니다.”

상대가 품목을 말했다.

준석이 메모 뒷면에 받아 적었다.

“잠깐만요. 규격 다시 한번 불러주세요.”

숫자를 적었다.

“언제까지 필요하십니까?”

— 내일까지 되면 좋고요. 안 되면 모레라도요.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준석이 끊으려는데 상대가 물었다.

— 그런데 김 대리님은 어디로 연락드리면 돼요?

준석의 펜이 멈췄다.

“저요?”

— 회사로 전화드리면 됩니까?

준석은 전화부스 밖을 봤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좀 그렇습니다.”

— 아…… 그래요?

“네.”

— 그럼 다른 번호 있으세요?

준석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집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 여보세요?

“네.”

— 어디로 연락드릴까요?

준석은 메모지를 접었다.

“제가 내일 전화드리겠습니다.”

— 몇 시쯤요?

“점심 전에요.”

— 알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었다.

동전 반환구를 한번 확인한 뒤 전화부스에서 나왔다.


* * *


태규가 회사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준석이 불렀다.

“태규야.”

태규가 돌아봤다.

“아직 안 가셨어요?”

“너 기다렸어.”

“저를요?”

준석이 먼저 걸었다.

태규가 따라붙었다.

“왜요?”

“최 대리가 알았어.”

태규가 준석을 봤다.

“뭘요?”

“우리 하는 거.”

“뭐라고 하시던데요?”

“회사 일부터 하래.”

태규는 잠깐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네요.”

준석이 태규를 봤다.

“너는 꼭 그런 말을 한다.”

“맞잖아요.”

준석이 피식 웃었다.

“그래. 맞아.”

둘은 몇 걸음 더 걸었다.

준석이 말했다.

“근데 전화는 어디로 받냐?”

“무슨 전화요?”

“밖에서 오는 거.”

“회사 말고요?”

“어.”

태규가 생각했다.

“집으로 받으면 안 됩니까?”

“낮에 집에 누가 있어.”

“그러네요.”

잠시 뒤 태규가 말했다.

“휴대전화 하나 사셔야겠네요.”

준석이 태규를 봤다.

“비싸.”

“얼마인데요?”

“몰라. 비싸겠지.”

“그럼 어떻게 아세요?”

준석이 웃었다.

“가서 보자.”

길 건너편에 통신 대리점이 있었다.

둘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 * *


대리점 직원은 휴대전화 몇 대를 꺼내놓았다.

가격을 듣던 준석이 물었다.

“이게 제일 싼 겁니까?”

“휴대전화는요.”

태규가 준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얼만데요?”

준석이 작게 금액을 말했다.

태규가 진열대에 놓인 전화기를 다시 봤다.

“비싸긴 하네요.”

직원이 옆 진열대를 가리켰다.

“전화 거실 필요 없고 연락만 받으실 거면 호출기도 있습니다.”

준석이 고개를 돌렸다.

“저건요?”

직원이 제품 하나를 꺼냈다.

가격과 가입비를 설명했다.

준석이 물었다.

“번호 하나 나오는 거죠?”

“네.”

“누가 이 번호로 호출하면요?”

“번호 확인하시고 전화하시면 됩니다.”

준석이 잠깐 생각했다.

태규가 말했다.

“아까 그 사람한테 이 번호 주면 되겠네요.”

준석이 태규를 봤다.

다시 호출기를 봤다.

“이게 제일 싼 거예요?”

직원이 다른 제품 하나를 꺼냈다.

“기본형은 이쪽이요.”

준석이 손에 들어봤다.

“이걸로 할게요.”


* * *


직원이 신청서를 내밀었다.

“여기 성함 쓰시고요.”

준석이 펜을 들었다.

김준석.

주소를 적었다.

연락처 칸에서 잠깐 멈췄다가 집 전화번호를 썼다.

태규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

직원이 말했다.

“신분증도 주세요.”

준석이 지갑을 열었다.

태규가 가격표를 다시 봤다.

“돈은요?”

“뭐.”

“저도 낼까요?”

준석이 신청서를 쓰면서 말했다.

“됐어.”

“아까는 반씩 내자면서요.”

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언제?”

태규가 준석을 쳐다봤다.

“방금 오면서.”

“그건 휴대전화.”

“똑같은 거 아닙니까?”

준석이 웃었다.

“됐다니까.”

태규도 더 말하지 않았다.

직원이 신청서를 확인했다.

“명의는 김준석 씨로 들어갑니다.”

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규는 신청서를 한번 봤다.

직원은 호출번호가 적힌 종이를 함께 건넸다.


* * *


밖으로 나오자 준석이 종이를 태규에게 내밀었다.

“적어.”

“어디다요?”

“네 수첩.”

태규가 수첩을 꺼냈다.

첫 장을 펼쳤다.

거래처 전화번호 위쪽 빈 곳에 숫자를 적었다.

준석이 물었다.

“됐어?”

“네.”

“불러봐.”

태규가 번호를 읽었다.

준석은 호출기에 붙은 번호와 맞춰봤다.

“맞네.”

태규가 수첩을 덮었다.

준석은 호출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한동안 내려다봤다.

“근데.”

“왜요?”

“이거 되는지 어떻게 아냐?”

태규가 호출기를 봤다.

길 건너편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찍어보면 되죠.”

준석이 웃었다.

“가자.”

신호가 바뀌었다.

둘은 다시 길을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