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그것도 됩니까

by시노

오전에 들른 두 곳 모두 주문이 줄었다.
한 곳은 지난달의 절반만 달라고 했고, 다른 곳은 다음 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
“재고 때문입니까?”
준석이 묻자 담당자가 웃었다.
“돈 때문이지.”
준석도 웃었다.
“다음 주에는 됩니까?”
“다음 주에 물어봐요.”
“알겠습니다.”
공장을 나오며 준석은 수첩에 적었다.
다음 주 다시
수첩을 덮었다.


점심을 지나 도착한 곳은 오래 거래한 공장이었다.
구매 담당자는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건 보전 쪽에 물어보세요.”
잠시 들었다.
“나도 모른다니까.”
준석은 맞은편에 앉아 기다렸다.
담당자가 다른 서류를 넘겼다.
“사람 없어요. 알아서 좀 해요.”
전화를 끊고서야 준석을 봤다.
“미안해요.”
“바쁘시네요.”
“요즘 안 바쁜 사람이 있나.”
준석이 가방에서 견적서를 꺼냈다.
“지난번 말씀하신 거 가져왔습니다.”
담당자가 받아 들었다.
몇 줄을 훑더니 수량 하나를 고쳤다.
준석이 봤다.
“또 줄이셨어요?”
“위에서 줄이라는데 어떡해.”
준석은 견적서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담당자가 다시 전화기를 들려다 멈췄다.
“김 대리.”
“네.”
“한주 갈 일 있어요?”
“한주요?”
“기계상가.”
“왜요?”
담당자가 바카라상 한쪽의 메모지를 집어 건넸다.
“갈 일 있으면 이것 좀 봐줄 수 있나 해서.”
준석이 읽었다.
처음 보는 품목이었다.
“저희 건 아닌데요.”
“알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
전화벨이 울렸다.
담당자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전화를 받았다.
“네.”
표정이 금세 굳었다.
“그건 아까 얘기했잖아요.”
준석은 메모지를 든 채 기다렸다.
통화가 끝났다.
담당자가 이마를 한번 문질렀다.
준석이 메모지를 들어 보였다.
“이거 급한 겁니까?”
“오늘까진 아니에요.”
“그럼 직접 주문하시면 되잖아요.”
담당자가 준석을 봤다.
“어디다?”
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담당자가 메모지를 다시 가져갔다.
“됐어요. 내가 알아볼게.”
준석이 일어났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요.”


준석이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뒤에서 문이 열렸다.
“박 기사!”
작업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돌아봤다.
“네?”
“한주 좀 갔다 와.”
“지금요?”
담당자가 메모지를 내밀었다.
“이거.”
남자가 받아 들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담당자가 잠깐 멈췄다.
“가서 물어봐.”
남자는 메모지를 접어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주차장 한쪽에 세워둔 봉고차로 뛰어갔다.
준석은 자기 차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봤다.
봉고차가 먼저 공장을 빠져나갔다.
준석도 차 문을 열었다.


다음 날 다른 거래처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담당자가 납품전표에 사인하다 말했다.
“지난번 그 벨트 또 끊어졌어요.”
“구하셨어요?”
“사람 보냈죠.”
준석이 전표를 받았다.
“한주로요?”
“어디로 가겠어요.”
담당자가 시계를 봤다.
“두 시간째 안 오네.”
준석은 가방에 전표를 넣었다.
“기계는요?”
“세워놨죠.”
전화가 울렸다.
담당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준석은 인사하고 나왔다.


퇴근 무렵.
준석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태규가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대리님.”
“어.”
“퇴근하세요?”
“이제.”
둘이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준석이 몇 계단 내려가다 물었다.
“태규야.”
“네.”
“한주 갔다 오면 얼마나 걸려?”
태규가 준석을 봤다.
“뭐 찾느냐에 따라 다른데요.”
“보통.”
“두세 시간?”
준석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걸려?”
“못 찾으면 더 걸리고요.”
둘은 몇 계단을 더 내려갔다.
태규가 물었다.
“뭐 찾으세요?”
“내가 아니고.”
“그럼요?”
“거래처.”
현관문이 열렸다.
둘은 각자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준석은 전날 들렀던 공장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그냥 지나쳤다가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잠깐 앉아 있었다.
다시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구매 담당자가 준석을 보더니 말했다.
“또 왔어요?”
“근처 왔다가요.”
“왜요?”
준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물었다.
“어제 그거 구하셨어요?”
“뭐요?”
“한주 보낸 거.”
담당자가 잠깐 생각했다.
“아.”
“있었어요?”
“없었대.”
“그럼요?”
“다른 데 갔지.”
“구했고요?”
담당자가 고개를 저었다.
“못 구했어.”
“그럼?”
“오늘 또 갔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담당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준석은 맞은편에 앉아 기다렸다.
바카라상 위에 자기 회사 발주서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작은 메모지가 보였다.
품목명 하나.
전화번호 두 개.
둘 다 줄이 그어져 있었다.
준석은 자기 수첩을 꺼냈다.
며칠 전 적었던 줄을 찾았다.
한주 - 사람 보냄
그 뒤에 두 글자를 붙였다.
또 감
준석은 수첩을 덮으려다 멈췄다.
통화를 끝낸 담당자에게 물었다.
“뭐 찾는 건데요?”
“왜요?”
“그냥요.”
담당자가 품목과 규격을 불러줬다.
준석이 받아 적었다.
“이거 맞죠?”
“네.”
“알겠습니다.”
“뭘 알겠어요?”
준석이 수첩을 덮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에 돌아왔을 때는 다섯 시가 넘었다.
준석은 영업부로 올라가다 계단에서 멈췄다.
한 층 아래를 내려다봤다.
잠깐 서 있다가 방향을 바꿨다.
자재과 문을 열었다.
몇 사람은 이미 퇴근했고 태규는 아직 자리에 있었다.
태규가 고개를 들었다.
“대리님.”
준석이 다가왔다.
“안 갔어?”
“이제 가려고요.”
준석이 수첩에서 메모지 한 장을 뜯었다.
태규 바카라상 위에 놓았다.
“이거 알아?”
태규가 읽었다.
품목명.
규격.
잠시 말이 없었다.
“이거 어디서 받으셨어요?”
“거래처.”
태규가 다시 메모지를 봤다.
서랍을 열었다.
수첩을 꺼냈다.
몇 장을 넘겼다.
손이 멈췄다.
준석이 물었다.
“왜?”
태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첩을 돌렸다.
준석이 내려다봤다.
며칠 전 태규가 적어놓은 품목명.
그 아래에는 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모름
준석이 태규를 봤다.
태규도 준석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