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상가 입구에서부터 철제 셔터 내려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낮 동안 물건을 실어 나르던 손수레 몇 대가 벽에 세워져 있었고, 골목 한쪽에는 빈 종이상자가 노끈에 묶여 있었다.
문을 닫지 않은 가게에서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달러 환율이 다시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또 올랐어?”
장부를 보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내일 견적 또 바꿔야겠네.”
맞은편 가게 셔터에는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임대 문의.
태규는 그 앞을 지나 안쪽으로 걸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가게 간판만 봤다.
오늘은 사람들이 보였다.
한주 사장은 카운터에 앉아 장부를 맞추고 있었다.
태규를 알아보고 안경을 벗었다.
“어?”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지나가다가요.”
사장이 피식 웃었다.
“회사에서 여기까지?”
태규도 웃었다.
“그러게요.”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뇨.”
“그럼 커피나 한잔해.”
사장이 종이컵을 꺼냈다.
커피포트에서 물을 붓는데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사장님, 베어링 왔어요?”
“왔지.”
사장이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남자는 뚜껑을 열어 규격부터 확인했다.
“얼마예요?”
사장이 가격을 말했다.
“지난번보다 올랐잖아요.”
“나도 올라서 받았어.”
“그냥 지난번 값으로 해줘요.”
“현금?”
남자가 웃었다.
“월말에 드려야죠.”
“그럼 안 되지.”
“열 개 가져갈 건데.”
“열 개든 백 개든 외상이잖아.”
둘 사이에서 숫자가 몇 번 오갔다.
남자가 결국 지갑을 꺼냈다.
“그럼 다섯 개만 현금으로 할게요.”
“진작 그러지.”
사장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태규는 종이컵을 든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물건을 챙겨 나갔다.
문이 닫혔다.
태규가 카운터 위 상자를 가리켰다.
“사장님.”
“왜?”
“저건 한 개면 얼마예요?”
사장이 가격을 말했다.
“열 개면요?”
사장이 태규를 봤다.
“살 거야?”
“아뇨.”
“근데?”
“아까 값이 달라서요.”
사장이 담배를 꺼냈다.
“현금이면 저 값이고.”
“월말이면요?”
“내 돈 한 달 묶어놓는데 똑같겠어?”
라이터 불이 붙었다.
태규는 상자 옆에 적힌 규격을 봤다.
수첩을 꺼내 적었다.
사장이 담배를 물고 웃었다.
“별걸 다 적네.”
“자꾸 잊어버려서요.”
“그건 잘하는 거야.”
태규가 수첩을 넣다가 물었다.
“이건 어디서 가져오세요?”
사장의 손이 멈췄다.
“왜?”
“그것도 적어놓으려고요.”
“그건 안 가르쳐주지.”
“왜요?”
사장이 연기를 내뿜었다.
“그걸 알려주면 자네가 거기 가서 사면 되잖아.”
태규가 웃었다.
“그렇네요.”
“이제 알겠어?”
“네.”
사장은 장부를 다시 펼쳤다.
“커피 마시고 가. 나 문 닫아야 돼.”
태규는 남은 커피를 마셨다.
밖으로 나오자 뒤에서 셔터가 내려왔다.
철판 부딪히는 소리가 골목을 따라 퍼졌다.
다음 날 아침.
자재과에는 밤새 밴 담배 냄새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열었지만 찬 공기만 들어왔다.
태규는 오상민에게서 넘어온 서류철을 정리했다.
발주서 한 장을 넘기다 손이 멈췄다.
베어링이었다.
어디서 본 규격 같았다.
태규는 서랍에서 수첩을 꺼냈다.
어젯밤 적어놓은 숫자를 찾았다.
다시 발주서를 봤다.
같았다.
가격은 달랐다.
태규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옆자리 김 주임이 물었다.
“뭐 해?”
“이것 좀 보십시오.”
태규가 발주서를 내밀었다.
김 주임이 받아봤다.
“왜?”
“어제 한주에서 이것보다 싸게 파는 걸 봤습니다.”
“현금이지?”
“네.”
“우린 월말이고.”
“그래도 차이가 좀 나는데요.”
김 주임이 발주서를 다시 밀었다.
“그럼 과장님한테 거래처 바꾸자고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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