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이 태성기공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공장 안이 평소보다 한산했다.
사장은 기계 한 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기름을 닦아낸 걸레가 몇 장 널려 있었다.
준석이 가까이 갔다.
“뭔데 그러세요.”
사장이 일어나며 손에 든 걸 내밀었다.
검은 호스였다. 중간이 길게 갈라져 있었고 양쪽 끝에는 금속 부품이 붙어 있었다.
“이게 터졌어.”
준석이 받아 들었다.
“호스요?”
“응.”
“기계 업체는요?”
“전화했지.”
“뭐랍니까?”
“사흘.”
준석이 사장을 봤다.
“사람 오는 데요?”
“이거 가져오는 데.”
사장이 호스를 가리켰다.
준석은 멈춰 있는 기계를 한번 봤다.
“저한테 이걸 구해달라는 겁니까?”
“응.”
“사장님.”
“왜.”
“저 호스 파는 사람 아닙니다.”
“알아.”
“그런데 왜 자꾸 저한테 이러세요.”
사장이 준석을 쳐다봤다.
“김 대리는 오잖아.”
준석이 할 말을 잃었다.
사장은 호스를 다시 준석 손에 쥐여줬다.
“오늘 안 될까?”
“모릅니다.”
“알아만 봐줘.”
준석은 호스를 내려다봤다.
“똑같은 게 있어야죠.”
“있으면?”
“가져와야죠.”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준석이 웃었다.
“뭐가 자꾸 됩니까.”
회사로 돌아온 준석은 자재과로 내려갔다.
태규 바카라상 위에 호스를 내려놓았다.
“이거 알아?”
태규가 집어 들었다.
“호스잖아요.”
준석이 눈을 감았다.
“됐다.”
“왜요?”
“오늘 사람들이 다 이래.”
태규가 호스를 돌려봤다.
“어디 쓰는 겁니까?”
“태성기공.”
“그건 회사고요.”
준석이 태규를 봤다.
“유압기계.”
“압력은요?”
“모른다.”
“사이즈는요?”
“모른다.”
태규가 호스를 내려놨다.
“그럼 뭘 압니까?”
“사흘.”
“뭐가요?”
“이거 갖다주는 데.”
태규가 웃었다.
“그건 잘 아시네요.”
“오늘 안에 구해달래.”
태규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잠시 호스를 들여다보다 서랍을 열었다.
수첩을 꺼냈다.
몇 장을 넘겼다.
“한주에 호스 하는 데 있긴 한데요.”
“있어?”
“간판은 봤어요.”
준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게 아는 거냐?”
“형보다는 많이 알죠.”
준석이 태규를 봤다.
“요즘 너 말이 좀 세졌다.”
태규가 수첩을 덮었다.
“회사에서는 안 그럽니다.”
준석이 피식 웃었다.
“퇴근하고 가보자.”
“오늘요?”
“오늘 구해달라잖아.”
태규가 벽시계를 봤다.
“문 닫기 전에 가야겠네요.”
퇴근하자마자 둘은 한주로 향했다.
상가에 도착했을 때 몇몇 가게는 벌써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태규가 수첩을 보며 앞장섰다.
“이쪽입니다.”
“확실해?”
“간판 봤다니까요.”
“간판만.”
“그럼 형이 찾으세요.”
“가.”
가게 하나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벽에는 여러 굵기의 호스가 둥글게 말려 걸려 있었다.
태규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작업대 뒤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뭐요?”
태규가 가져온 호스를 올려놓았다.
남자는 호스를 들어 양쪽 끝을 살폈다.
“어디 쓰는 거예요?”
준석이 대답했다.
“유압기계요.”
“그건 보면 알고.”
남자가 금속 부분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압력은?”
둘이 잠잠해졌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몰라요?”
준석이 웃었다.
“네.”
“그럼 못 해.”
태규가 물었다.
“이거하고 똑같이 하면 안 됩니까?”
“호스가 다 똑같은 줄 알아요?”
남자가 낡은 호스 옆면을 닦았다.
희미한 글자를 살펴봤다.
“기계가 뭐예요?”
준석이 업체에서 들은 기계 종류를 말했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압 얼마 먹는지는?”
“그건…….”
준석이 가게 전화기를 봤다.
“전화 한번 써도 됩니까?”
남자가 수화기를 턱으로 가리켰다.
“해봐요.”
전화는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태성기공에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기계를 들여온 업체 번호를 받았다.
다시 걸었다.
한참 기다린 끝에 필요한 내용을 받아냈다.
준석이 불러주고 태규가 받아 적었다.
태규가 종이를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읽어보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호스와 금속 피팅 몇 개를 가져왔다.
“길이는 이거하고 같아요?”
“네.”
남자는 낡은 호스를 옆에 놓고 길이를 맞췄다.
준석과 태규는 작업대 앞에서 기다렸다.
준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것도 여기서 해주네.”
태규가 대답했다.
“저도 처음 봅니다.”
“아는 척은.”
“언제 했습니까?”
작업대에서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완성된 호스를 내밀었다.
“확인해봐요.”
준석은 새 호스와 낡은 호스를 나란히 놓았다.
“얼마입니까?”
남자가 금액을 말했다.
준석이 지갑을 꺼냈다.
태규가 물었다.
“혹시 하나 더 해놓을까요?”
준석이 바로 쳐다봤다.
“왜?”
“또 터지면요.”
“그건 저쪽에 물어봐야지.”
남자가 끼어들었다.
“그게 맞아요. 쓸데없이 사놓지 말고.”
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주세요.”
준석이 돈을 건넸다.
가게를 나오자 셔터가 바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준석이 뒤를 돌아봤다.
“조금만 늦었으면 못 샀네.”
태규가 수첩에 상호를 적었다.
“그러게요.”
태성기공에는 아직 불이 환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사장이 바로 나왔다.
“구했어?”
준석이 새 호스를 내밀었다.
“맞는지는 끼워봐야 압니다.”
사장은 직원을 불렀다.
호스가 기계 쪽으로 넘어갔다.
준석과 태규는 작업대 옆에 서서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걸렸다.
태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 맞으면 어떡합니까?”
“그걸 왜 지금 물어.”
“그냥요.”
“조용히 있어.”
잠시 후 기계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한번 돌려봐요.”
모터가 돌았다.
낮은 진동이 바닥으로 전해졌다.
몇 초 뒤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장은 아무 말 없이 호스 연결부를 한동안 들여다봤다.
새는 곳이 없었다.
작업자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옆에 쌓아둔 소재를 가져왔다.
다른 사람도 움직였다.
멈춰 있던 기계 주변으로 다시 사람들이 붙었다.
준석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사장이 다가왔다.
“얼마 들었어?”
준석이 금액을 말했다.
사장이 지갑을 꺼냈다.
돈을 세더니 준석에게 내밀었다.
준석이 물건값만 받았다.
사장이 다시 몇 장을 더 내밀었다.
“이것도 받아.”
“왜요?”
“왔다 갔다 했잖아.”
“됐습니다.”
“받아.”
“안 됩니다.”
사장이 준석을 봤다.
“왜.”
“회사 다니는 사람이 거래처에서 이런 거 받으면 안 되죠.”
“회사에서 이거 사오라고 했어?”
“그건 아닌데요.”
“그럼.”
준석이 웃으며 손을 뒤로 뺐다.
“그래도 안 됩니다.”
사장은 잠깐 더 내밀고 있다가 결국 돈을 넣었다.
“김 대리.”
“네.”
“다음에도 이런 거 있으면 전화해도 돼?”
준석이 웃었다.
“또요?”
“돈 줄게.”
“돈 얘기가 아니라요.”
“싫어?”
준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장이 말했다.
“오늘 같은 거.”
뒤에서 기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준석이 그쪽을 한번 봤다.
“전화는 해보세요.”
“그러면 되지.”
공장을 나왔을 때는 밤이었다.
태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왜 안 받았어요?”
“뭘.”
“더 준다는 거요.”
“그걸 왜 받아.”
“회사에서 시킨 일은 아니잖아요.”
준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거래처야.”
“그렇긴 하죠.”
“너도 괜히 받지 마.”
“누가 저한테 줍니까.”
준석이 웃었다.
둘은 다시 걸었다.
조금 뒤 태규가 말했다.
“그래도 돈을 더 주려고 하네요.”
“그러게.”
“호스값 말고요.”
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배 안 고파?”
“고픕니다.”
“뭐 먹을래?”
“형이 사는 거면 아무거나요.”
“왜 내가 사.”
“오늘 제가 같이 다녔잖아요.”
준석이 어이없다는 듯 태규를 봤다.
“그 논리면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태규가 잠깐 생각했다.
“그러네요.”
“이 자식 봐라.”
태규가 웃었다.
준석도 따라 웃었다.
“가자. 내가 살게.”
밤늦게 태규는 방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한주에서 받아온 상호를 적었다.
그 아래에 썼다.
유압호스
규격과 연락처를 옮겨 적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날짜를 적었다.
펜을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한 줄을 더 만들었다.
태성기공 — 사흘
태규는 한동안 그 글자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더 쓰려다 그만뒀다.
수첩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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