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외상은 안 됩니다

by시노

한주기계상가의 셔터가 하나둘 올라갔다.

철판 긁히는 소리가 골목을 타고 이어졌다.

“어제 돈 들어왔어?”

셔터를 밀어 올리던 남자가 옆 가게를 봤다.

“뭐?”

“대성.”

“아직.”

“이번 주 준다며.”

“다음 주래.”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형광등을 켰다. 벽을 따라 고무벨트와 호스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장부를 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들어왔다.

“사장님, 이거 두 개만 줘요.”

남자가 물건을 확인했다.

“현금?”

“다음 주에 같이 드릴게.”

“지난달 것도 있잖아.”

“다음 주엔 줘.”

남자는 물건을 내려놨다.

“그때 와.”

사내가 한동안 서 있었다.

“진짜 두 개만.”

남자는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내는 결국 빈손으로 나갔다.


김준석이 한주에 도착했을 때는 열한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전에 잡혀 있던 거래처를 한 군데 들른 뒤였다.

한 손에는 신문지로 둘둘 감은 벨트가 들려 있었다.

태규가 적어준 상호를 찾느라 같은 골목을 두 번 돌았다.

“여기 맞나.”

유리문 위 간판을 다시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안쪽에서 남자가 나왔다.

“뭐 찾는데요?”

준석이 신문지를 풀었다.

“이거요.”

남자는 벨트를 집어 들었다. 옆면을 훑어보고 한번 비틀어봤다.

“어디 들어가는 거예요?”

“기계요.”

남자가 준석을 봤다.

“무슨 기계?”

준석의 입이 잠깐 멈췄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모델은?”

“모르고요.”

남자는 벨트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것만 갖고는 모르겠는데.”

“안 됩니까?”

“기계가 뭔지도 모른다면서요.”

준석은 벨트를 내려다봤다.

“비슷한 건 없습니까?”

남자가 다시 한번 보더니 밖을 가리켰다.

“저 끝에 가봐요.”

“어디요?”

“끝까지 가서 오른쪽.”

“상호가 뭡니까?”

“벨트 걸어놓은 집 있어요.”

준석은 다시 신문지를 감았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 가게는 금방 찾았다.

벽 한쪽에 크기와 모양이 다른 벨트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주인은 낡은 벨트를 받아 들고 줄자를 가져왔다.

몇 군데를 재보더니 선반에서 하나를 꺼냈다.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이거 같은데.”

준석이 번갈아 봤다.

“맞습니까?”

“써봐야 알죠.”

“안 맞을 수도 있고요?”

“기계를 못 봤잖아요.”

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입니까?”

주인이 가격을 말했다.

준석이 다시 물었다.

“하나요?”

“네.”

“조금 안 됩니까?”

주인이 웃었다.

“얼마 생각했는데요?”

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가격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화 한 통만 하고 오겠습니다.”


상가 통로 끝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동전을 넣고 거래처 번호를 눌렀다.

“저 김준석입니다.”

— 어, 김 대리.

“벨트 말입니다.”

— 찾았어요?

“비슷한 건 있습니다.”

— 얼마예요?

준석이 가격을 말했다.

잠깐 조용했다.

— 그걸 그 돈 주고 사요?

“비쌉니까?”

— 비싸지.

“원래 얼마인데요?”

— 정확히는 몰라도 그 가격은 아니에요.

준석이 가게 쪽을 돌아봤다.

“내일까지 필요하시다면서요.”

— 급하다고 그 돈 주고 살 순 없잖아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 됐어요. 사지 마요. 내가 다른 데 알아볼게.

준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 괜히 갔네. 미안해요.

“아닙니다.”

전화가 끊겼다.

준석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반환구로 동전 하나가 떨어졌다.


“살 거예요?”

가게로 돌아오자 주인이 먼저 물었다.

준석은 새 벨트를 한번 봤다.

“조금 비싸다고 하네요.”

“그럼 사지 마요.”

“조금만 안 됩니까?”

“안 돼요.”

“아까 거래처에서는 비싸다는데.”

주인이 준석을 봤다.

“그럼 거기서 사라 그래요.”

준석이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 정도 합니까?”

“뭐가요?”

“가격이요.”

주인이 벨트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살 거예요, 말 거예요?”

준석은 지갑을 꺼냈다.

만원짜리 몇 장과 천원짜리가 있었다.

세어보려다 그만뒀다.

지갑을 닫았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장님.”

“네.”

준석이 한번 웃었다.

“이거…… 외상은 안 되죠?”

주인이 준석을 봤다.

“처음 오셨잖아요.”

준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현금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준석은 낡은 벨트를 신문지에 다시 쌌다.


점심시간이 지난 상가는 아침보다 사람이 많았다.

손수레가 통로를 지나갔다.

가게마다 전화벨이 울렸다.

“삼천짜리 있어?”

“열 개면 얼마야?”

“그거 말고 검은 거.”

“세금계산서 끊어줘.”

준석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아까 그 가게 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번 가격으로 해줘요.”

“그 가격 안 돼.”

“지난주에 그렇게 샀잖아.”

“들어오는 게 올랐어.”

준석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그대로 몇 걸음 더 갔다.

멈췄다.

뒤를 한번 돌아봤다.

사람 둘이 물건을 사이에 놓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준석은 다시 걸었다.


공중전화에서 회사로 전화했다.

교환을 거쳐 자재과가 연결됐다.

“자재과 서태규입니다.”

“나다.”

— 대리님?

“응.”

— 찾으셨어요?

“있긴 있어.”

— 그럼 사셨어요?

“안 샀어.”

— 왜요?

“비싸대.”

— 누가요?

“달라는 사람이.”

수화기 너머에서 태규가 웃었다.

— 그럼 왜 사러 가셨어요?

준석도 웃었다.

“그러게.”

잠시 말이 끊겼다.

“태규야.”

— 네.

“네 수첩에 가격도 적어놨어?”

— 뭐 가격이요?

준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다.”

— 왜요?

“들어가서 보자.”

— 대리님.

“왜.”

— 벨트는요?

준석은 손에 든 신문지 뭉치를 내려다봤다.

“그대로 있다.”

태규가 웃었다.

— 괜히 가셨네요.

준석도 웃었다.

“그러게.”

전화를 끊었다.

준석은 신문지 뭉치를 한 손에 고쳐 들었다.

사람들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 준석도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