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람을 보내야죠

by시노

“그건 구했습니다.”

김준석이 수첩에서 눈을 들었다.

“구하셨어요?”

“네.”

거래처 구매담당자는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며칠 전 다른 물건 하나를 같이 가져다줄 수 있느냐고 했던 일이었다.

“어디서 구하셨어요?”

“한주요.”

“직접 가셨어요?”

담당자가 웃었다.

“내가 거길 왜 갑니까. 막내 보냈죠.”

“금방 구했습니까?”

“몇 군데 돌았다던데요.”

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담당자가 서류 한 장을 앞으로 밀었다.

“그런데 김 대리. 다음 달 물량 좀 줄여주세요.”

준석의 시선이 내려갔다.

“얼마나요?”

담당자가 숫자를 짚었다.

준석이 다시 상대를 봤다.

“이렇게 많이요?”

“우리도 줄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그대로 간다고 하셨잖습니까.”

“지난번에는 그랬죠.”

준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수첩에 적힌 숫자 위로 줄을 긋고 새 숫자를 썼다.

“알겠습니다. 들어가서 얘기해보겠습니다.”


복도를 나오는데 열린 사무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박 대리 오늘 안 나왔어?”

“어제까지만 나왔어.”

“진짜?”

“쉿.”

준석은 그대로 지나갔다.

현관 앞에는 납품차량 한 대가 서 있었다. 기사가 빈 대차를 밀어 짐칸에 싣고 있었다.

준석은 담배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수첩을 펼쳤다.

조금 전 고쳐 적은 숫자가 보였다.

그 아래 다음 방문처 이름을 적었다.

수첩을 덮었다.


“오늘 들어오는 거 맞죠?”

서태규가 수화기를 귀에 붙였다.

상대의 대답을 듣던 얼굴이 굳었다.

“이번 주는 어렵다고요?”

맞은편 박 대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언제 됩니까?”

태규가 한동안 들었다.

“오늘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박 대리가 손을 내밀었다.

“줘봐.”

태규가 수화기를 넘겼다.

“박 대립니다.”

태규는 자리로 돌아와 발주서를 확인했다.

납기란에는 오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옆에서 박 대리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주에 확인했잖아요.”

잠시 뒤.

“알았어요. 일단 끊어봐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안 된답니까?”

“응.”

박 대리가 발주서를 태규 쪽으로 밀었다.

“다른 데 알아봐.”

태규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냐고 묻지 않았다.

서랍을 열어 작은 수첩을 꺼냈다.

지난번 성진동을 돌아다니며 받아 적었던 상호와 전화번호들이 나왔다.

첫 번째 번호.

없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번호를 눌렀다.

“자재과 서태규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한번 갔었는데요.”

규격을 읽었다.

— 잠깐만요.

태규는 기다렸다.

한참 뒤 상대가 돌아왔다.

— 있어요.

“오늘 받을 수 있을까요?”

— 직접 오셔야 돼요.

“배달은 어렵습니까?”

상대가 웃었다.

— 그것만 갖다달라고요?

태규도 웃었다.

“그렇죠.”

— 사람 보내세요.

“네.”

전화를 끊었다.

박 대리가 물었다.

“있대?”

“네.”

“오늘 돼?”

“직접 오랍니다.”

박 대리가 시계를 봤다.

태규도 따라 봤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박 대리가 서랍을 열었다.

“돈 받아가.”


한주의 점포.

남자가 전화를 내려놓았다.

안쪽에서 상자를 정리하던 직원이 물었다.

“어디예요?”

“회사.”

“많이 달래요?”

“아니.”

“배달해달래요?”

남자가 장부를 펼쳤다.

“응.”

직원이 웃었다.

“갖다주지 그러셨어요.”

남자는 장부에서 눈도 들지 않았다.

“네가 갈래?”

직원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전화가 울렸다.

남자가 수화기를 들었다.

“네, 한주기계상사입니다.”


태규가 점포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다른 손님과 이야기 중이었다.

한쪽에 서서 기다렸다.

잠시 뒤 남자가 태규를 알아봤다.

“아까 전화한 사람?”

“네.”

남자가 안쪽을 향해 말했다.

“아까 그거 줘.”

직원이 작은 포장 하나를 가져왔다.

태규가 내용물을 확인했다.

“맞습니다.”

가격을 물어 계산했다.

물건과 영수증을 가방에 넣었다.

남자가 물었다.

“회사 어디라고 했죠?”

태규가 회사 이름을 말했다.

“멀리서 왔네.”

“네.”

“매번 이렇게 와요?”

태규가 웃었다.

“안 오게 해주시면 좋은데요.”

남자가 피식 웃었다.

“배달?”

“네.”

“안 돼.”

“그럴 줄 알았습니다.”

태규가 인사하고 나갔다.

이전처럼 가게를 오래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길에 수첩부터 꺼냈다.

점포 이름 옆에 짧게 적었다.

재고 있음. 배달 안 함.

수첩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늦은 오후.

준석이 영업부에서 자재과로 전화를 걸었다.

“서태규 씨 좀 바꿔주세요.”

잠시 뒤 태규 목소리가 들렸다.

— 네.

“나야.”

— 네, 대리님.

“오늘 어디 갔다 왔어?”

— 한주요.

“또?”

— 네.

“물건 때문에?”

— 납품이 안 돼서요.

“구했어?”

— 네.

준석이 잠깐 말이 없었다.

“얼마나 걸렸어?”

— 두 시간 좀 넘게요.

준석은 오전 거래처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막내 보냈죠.

전화기 너머에서 태규가 말했다.

— 대리님?

“응.”

— 더 물어보실 거 없으면 끊겠습니다.

준석은 입을 열었다가 말았다.

“내일 점심 같이 먹자.”

— 구내식당에서요?

“응.”

— 네.

전화가 끊겼다.

준석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옆자리 최 사원이 물었다.

“누구야?”

“자재.”

“무슨 일?”

준석이 서랍을 닫았다.

“밥 먹으려고.”

최 사원이 웃었다.

“자재랑 밥도 먹냐?”

준석도 따라 웃었다.

“밥은 아무나랑 먹지.”

전화가 울렸다.

준석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영업부 김준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