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렸다.
김준석은 출고일정을 적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네, 영업부 김준석입니다.”
상대 목소리를 알아듣고 달력을 당겨왔다.
“네, 대리님. 금요일 맞습니다.”
수량을 다시 확인했다.
“그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준석의 볼펜이 멈췄다.
“그건 저희 제품이 아닌데요.”
잠시 들었다.
“같이요?”
빈 메모지를 끌어왔다.
“어떤 건데요?”
품목과 규격을 받아 적었다.
“수량은요?”
다시 적었다.
“네. 일단 확인해보겠습니다. 저희 취급품목은 아니라서요.”
통화를 끝내려다 준석이 한마디 더 했다.
“금요일 전에 꼭 필요한 겁니까?”
상대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옆자리 최 사원이 물었다.
“또 뭐래?”
“금요일 납품할 때 다른 것도 같이 가져다달래.”
“뭔데?”
준석이 메모를 보여줬다.
최 사원은 한번 보고 돌려줬다.
“우리 거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해.”
준석은 메모를 내려다봤다.
“금요일 전에 필요하다잖아.”
최 사원이 준석을 봤다.
“그래서?”
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어나 보지 뭐.”
최 사원은 이미 자기 서류를 보고 있었다.
준석은 사내전화 번호표를 펼쳤다.
“자재과입니다.”
“서태규 씨 있어요?”
“접니다.”
“나 영업 김준석인데.”
— 네, 대리님.
“물건 하나 물어보려고.”
준석이 메모를 읽었다.
잠시 뒤 태규가 말했다.
— 그거 저희가 쓰는 겁니까?
“아니.”
— 그러면요?
“거래처에서 납품할 때 같이 가져다달래.”
잠깐 뜸이 생겼다.
— 우리 취급품목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맞아.”
— 그럼 박 대리님께 말씀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좀 바꿔줘.”
태규가 옆자리 박 대리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영업 김준석 대리입니다.”
박 대리가 받았다.
“어, 김 대리.”
태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박 대리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쓰는 거야?”
잠시 뒤.
“그런데 왜 우리한테 물어봐.”
태규가 입가를 조금 올렸다.
자기가 방금 했던 말과 비슷했다.
박 대리는 한동안 듣더니 말했다.
“알았어. 과장님 오시면 얘기해볼게.”
전화를 끊었다.
태규가 물었다.
“뭐래요?”
“거래처에서 부탁했대.”
“해주는 겁니까?”
“과장님 오셔야 알지.”
박 대리는 서류를 집었다.
“하던 거 해.”
태규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과장이 돌아왔다.
박 대리가 오전 일을 짧게 보고했다.
과장은 메모를 한번 봤다.
“우리가 취급하던 거야?”
“아닙니다.”
“계속 달라는 거야?”
“이번 건만 얘기한 것 같습니다.”
과장은 메모를 내려놓았다.
“하지 마.”
“네.”
박 대리는 메모를 들고 돌아섰다.
과장이 다시 불렀다.
“박 대리.”
“네.”
“사람 빠진 자리도 못 채우고 있어. 괜히 일 벌이지 마.”
“알겠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네, 알겠습니다.”
준석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옆자리 최 사원이 물었다.
“안 된대?”
“응.”
“거봐.”
준석은 거래처 번호를 눌렀다.
몇 번 신호가 간 뒤 상대가 받았다.
“대리님, 김준석입니다.”
본품 출고 일정을 먼저 확인했다.
“그건 금요일 그대로 들어갑니다.”
잠시 후 말했다.
“아까 말씀하신 건 저희 쪽에서는 어렵겠습니다.”
상대가 뭐라고 했다.
“네. 취급품목이 아니라서요.”
준석은 잠깐 들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최 사원이 물었다.
“뭐래?”
“따로 알아본대.”
“그럼 됐네.”
최 사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됐어.”
준석은 오전에 받아 적었던 메모를 집었다.
두 번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며칠 뒤 점심시간.
태규는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다가 준석과 눈이 마주쳤다.
준석이 맞은편을 가리켰다.
“여기 앉아.”
태규가 앉았다.
둘은 한동안 밥을 먹었다.
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한주 갔다 왔다며.”
“네.”
“거기 물건 많아?”
태규가 김치를 집었다.
“많던데요.”
“공구 말고도?”
“베어링도 있고, 벨트도 있고. 이것저것요.”
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아무나 가서 살 수 있어?”
태규가 준석을 봤다.
“대리님도 가시게요?”
“아니.”
“그런데 뭘 그렇게 물어보세요.”
준석은 대답하지 않고 국을 떴다.
태규도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오후.
준석은 거래처에 전화를 걸었다.
납품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네. 수량은 그대로입니다.”
수첩에 표시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내려는데 상대가 무언가 말했다.
준석의 손이 멈췄다.
“아, 그거요?”
며칠 전 같이 가져다달라고 했던 물건이었다.
준석이 짧게 물었다.
“아직 못 구하셨어요?”
상대의 답을 들었다.
준석은 바카라상 위 볼펜을 만지작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옆자리 최 사원이 물었다.
“뭐?”
준석이 손을 뗐다.
“아까 그거.”
“아직도?”
“응.”
전화가 다시 울렸다.
준석은 바로 받았다.
“네, 영업부 김준석입니다.”